그대는 왜 주저하는 것이오 (2)
그대는 왜 주저하는 것이오 (2)
  • 승인 2013.01.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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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이른 바 달성십현(達城十賢) 중의 한 분으로 칭송 받고 있는 도곡 박종우(陶谷 朴宗祐) 선생은 또한 문재(文才)가 뛰어난 선비였다.

일찍이 대여섯 살 때 낙재 서사원(樂齋 徐思遠) 선생에게 나아가 글을 익혔고, 이어서 문목공(文穆公) 한강 정구(寒岡 鄭逑) 선생 문하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홍문관부수찬 박승현(朴升鉉)이 찬(撰)한 선생의 행장에 따르면 선생을 칭송하는 글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남파 심상국(南派 沈相國)은 선생에게 시를 써주기를 “천하에 둘 없는 선비요, 동한(東韓)에 제일가는 인재로서, 책 속에 성인의 길 스승삼고, 자리위엔 선비 품격 보전했네(天下無雙士 東韓第一人 卷中師聖道 席上保儒珍).”라고 하였고,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는 “영남의 문장가로서, 영주(瀛州)에 혼자 오를 수 있더라. 적선(積善)한 집에 마침내 훌륭한 후손 있나니 천도(天道)가 어찌 증거 없으리오? 기북(冀北)을 지나면 장차 마군(馬群)이 텅 비게 되고, 남으로 날아갈 때는 대붕(大鵬)이 되리라. 관주(觀周: 서울 觀光) 50 글귀가, 응당 사가(四佳: 徐居正)와 함께 일컬어지리라(嶺外文章伯 瀛洲可獨登 善家終宥後 天道豈無徵 過北徵空馬 圖南欲化鵬 觀周五十句 應竝四佳稱).”라고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관찰사가 선생에게 이러한 찬사를 보낸 것은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즈음하여 우국충정의 제안을 해 준데 대한 답신으로 추정되고, 우복 선생의 찬사 역시 당시 대구에서 벼슬을 지내며 선생의 인품을 겪은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생의 타고난 글재주도 있었겠지만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얻은 인품에 대한 찬사였다.

선생은 학문에 임하면서 끊임없이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추구함으로써 진덕수양(進德修養)의 요점으로 삼았다.

스승인 정구 선생의 『한강문집(寒岡文集)』에는 상례와 제례에 대한 답문(答問)이 많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도곡 선생과 나눈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선생은 의묘(擬墓)는 예가 아니므로 바로 장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사육신(死六臣)에 대한 제사는 국가적인 차원의 제사임에도 자기 집안에서 제사를 올리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스승에게 의논하여 시행하고 있음도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의(義)를 중시하고 직접 실행하였다. 1610년 한강 선생이 무고(誣告)를 당하게 되자 당시 많은 제자들이 함께 연루될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여러 방책이 논의되었는데 낙재 선생을 포함하여 많은 선비들이 이 일의 해결자로 선생을 추천하였다. 이에 선생이 앞장서서 스승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이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게 되었다.

뒤에 낙재 선생을 모시는 이강서원(伊江書院)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 상량문(上樑文)을 쓰는 일이 도곡 선생에게 맡겨졌는데 이 역시 선생이 그만큼 존경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선생은 호란(胡亂)을 겪으면서 임금이 머리를 숙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임금이 포위 중에 계시는데 내 어찌 방에서 편히 잠자리오.”하며 전후 2개월 동안 노숙하며 비분을 못 이겨하였다. 그리고는 “백성은 모두 오랑캐가 되었다. 의관과 신발이 거꾸로 되고 풍속이 바꾸어졌으니 비록 참고 죽지 않더라도 다시 글을 해서 무엇 하리오?”라고 하며 그 동안 쓴 글을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그러나 “난(亂) 뒤에 남은 삶이 만 번 죽음 겪었는데 오랑캐 걱정에 또 한해 봄도 저물어가네. 천산(天山)에 활을 걸고 돌아올 날이 언제이던고? 쓸모없는 글 읽은 몸 가련하도다(亂後餘生萬死藩 憂蠻瀘狄又今春 弓掛天山知幾日 可憐無用讀栖身).”라는 시는 지금도 남아 그 강개함을 전해 주고 있다.

이처럼 절의와 문재에 뛰어난 선현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길을 오가신 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한 분의 절의와 인품에 대해 너무 소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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