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라지만…
우연의 일치라지만…
  • 승인 2013.01.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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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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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증 걸린 화상에겐 소통(배설)이 장원급제보다 어렵다.

3일 만에 볼 일을 보니, 득도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그야말로 나는 기분이다.

소통은 안 되고 측상(좌변기)에 앉아 볼 일이 잘 안되어 기다리게 되니 쓰잘데 없는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필자의 작문속도는 급한 설사환자보다 신속한데, 배설속도는 좀 거시기하다.

측상의 대기시간이 지난 세월을 생각하는 말미가 되었으니 이 세상에 절대적인 불편은 없는 것 같다.

요사이 중등교사 임용고시가 하늘의 별따기다. 필자도 임용고시를 거쳐 공립 중등교사가 되었다.

1970년 2월2일 대구소재 제일여상에서 시험을 봤다. 가난 유죄(有罪)로 정규대학은 교문구경도 못하고 문교부에서 시행하는 중등(중·고)교사 자격고시검정에 응시하여 그 해 바로 합격하여 단발명중(單發命中)했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임용고시에 도전하여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아 응시예비교사 36명 중에 3등을 하여 옛날 과거로 말하자면 갑과(甲科) 등방을 한 셈이다.

새카만 준교사가 정교사를 제치고 3등을 하여, 불우하지만 난관을 극복한 나의 조그만 성공에 감루가 몇 방울 맺혔다.

중등준교사 시험은 문교부가 실시하지만 출제와 채점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위촉되어 관리했었다.

1차 필기시험은 최초의 여학사 가수 김상희씨의 모교인 풍문여고가 시험장소였는데, 응시자가 도합 5천명을 넘어 과장법에 능한 중국사람 같으면 억조창생이 다 모였다고 했을 것이다.

1차 필기고사(주관식) 합격자가 서울 용두동에 있던 서울사범대학 출제위원교수님의 깐깐한 질문공세를 받았다.

세 가지 구술고사 문제 중 두 문제 이상을 맞춰야 면접시험 합격이었다. 내게 질문공세를 퍼부은 분은 서울사대 역사교육과 변태섭 교수님과 이원순 교수님이다.

다행히 세 문제를 다 거뜬히 맞춰, 중등교사자격증을 손에 거머쥔 게 아니라 가슴에 얼싸안았다.

합격하자마자 임용고시를 거쳐 1970년 3월1일 경북 문경군 가은중학교 역사교사로, 부임인사를 꽤 괜찮게 하여 초임교사의 기백을 보여줬다.

준교사로 첫 출발을 하여 29년6개월 만에 교육계의 꽃이라고 하는 공립 중·고등학교 교장이 됐다.

교장이 되기까지 고립무원 한 외톨이로 파란만장을 헤치고, 정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난날이 눈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을 정도다.

나는 보기에 따라 좀 머시기 한 사람이라 개성이 있는 편이다.

2남2녀인 우리집 강아지(?) 이름을 전부 한글이름으로 지었다. 구체적인 이름은 공개 않겠다.

내 딴엔 머리를 굴려 독특한 한글 이름을 지어,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에 딴 사람들 귀엔 생소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4남매의 태어난 해가 조선시대 정기 과거를 실시하던 해인 식년과 우연이지만 일치가 된다.

식년(式年)은 3년 간격으로, 차례는 자·묘·오·유(子卯午酉)다. 맏딸은 쥐띠, 맏아들은 토끼띠, 차녀는 말띠, 차남은 닭띠다.

4남매가 모두 한글이름에다, 태어난 해가 식년과 일치하는데 모두가 좋으나 궂으나 4년제 국립대학 출신이다.

특기사항이랄 것은 없지만 네 아이가 모두 문재(文才)가 뛰어나 마음만 먹는다면 유수한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도 가능할 정도지만, 평생을 시인교사로 지샌 아비의 전철을 밟고 살고 싶지가 않은지 문학에 대한 관심은 무덤덤한 편이다.

우연의 일치를 몇 줄 적어 봤지만 인생살이는 우연이 우연으로 그치지 않고 필연이 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히 사제(師第)로 만나 평생을 사제의 의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고마운 제자들의 대성과 행복을 빌며, ‘우연일치’를 집필토록 기회를 주신 신께 필연적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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