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게 하는 메신저
사람을 만나게 하는 메신저
  • 승인 2013.01.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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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대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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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의 착신 램프가 깜박이면서 신호음이 울린다.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와 같은 공식화된 멘트를 하면서 자동화된 동작으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상대는 물리적인 소리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는지를 알려준다. 그 소리만으로 그와 나는 연결된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짐작도 가지 않는 곳에서 내 전화번호를 눌러 안내와 부탁과 같은 온갖 얘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중요하거나 긴급한 업무와 관련된 사람으로부터 온 전화일 경우에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여서 전화를 받는다. 오른손으로는 메모지를 준비하고 펜을 집어 든다. 중요한 ‘소리’를 놓칠까봐 긴장이 된다. 순간,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진동을 한다. 유선 전화를 그대로 받으면서 휴대전화 화면으로 발신자를 확인해 본다. 아, 더 중요한 전화다. 동시에 양쪽 전화에 모두 응대해야 한다.

이 난감한 상황에 컴퓨터 모니터 바닥에는 업무 협조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사인이 켜지면서 노랗게 깜박인다. 어느새 메시지는 몇 개가 쌓인다. 전화를 하는 내내 메시지들은 깜박임으로 사람을 재촉한다. 아마 아직 열어보지도 않은 전자문서시스템이나 메일을 통해서도 온갖 업무 협조와 연락 사항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전화, 팩스, 온라인 메신저, 전자문서, 전자메일을 비롯하여 블로그, 홈페이지, 우편물, 퀵 서비스와 같은 옷을 입고 메신저들은 소리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간혹 실물로 마구 다가온다.

이제는 온갖 SNS 서비스로 나도 모르게 친구로 연결된 사람들로부터 길을 걸을 때에도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메신저들은 나를 찾아온다. 바쁠 때는 귀찮던 메신저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이 메신저들을 만나는 것이 일이 되고 삶이 되었다.

예전에는 유선 전화도 매우 귀한 것이어서 아무나 함부로 사용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집에 있는 전화기는 온 동네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누나를 좋아하는 이웃집 형이 우리 누나에게 보내는 쪽지들을 직접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었다. 나 스스로도 여자 친구 집 창문 아래에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내기도 했다.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 말을 전해주기 위해 먼 친척 집까지 가기 싫은 심부름을 울면서 갔다 오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면서 ‘삐삐’라는 무선호출기가 나왔다. 문자는 되지 않고 숫자만 보낼 수 있는 이 답답한 물건은 ‘빨리빨리’를 ‘8282’로 ‘오빠 사랑해’를 ‘5454’로 전하고 받으면서도 우리에게 세상을 앞서간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그러다가 주머니에는 넣을 수 없던 그 큼직한, 약간 과장하여 벽돌형이라 하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는 세상을 손아귀에 넣은 듯 뿌듯해 하였다.

최초의 전자메일을 전송했을 때와, 내 홈페이지를 찾아온 알지 못하는 사람과 처음 접속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때 한석규와 전도연은 미팅으로 만나 데이트한 것이 아니라, 채팅으로 만나 ‘접속’을 하였다.

지금 손 안의 스마트 폰은 내가 이 기기를 알고 있는 것보다 때로는 이 기기가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폰은 갈수록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용하는 나는 갈수록 덜 스마트해지고 있다. 이 간격이 넓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손 안의 폰으로 화상통화 버튼을 누르면 상대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래도, 아니 그럴수록 기어코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없다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메신저로서는 교감할 수 없는, 만나야만 교감되는 무엇이 사람에게는 분명히 있다. 사는 일이 복잡하게 꼬여 사람이 보기 싫을 때도 많다. 그런데도 그것을 치유하기는 사람 만나는 일밖에 없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모니터 아래에서는 노란색 사인이 계속 깜박거리며 날 부르고 있다. 잠시 조용하던 전화기에는 착신 램프가 켜졌다. 휴대전화는 진동하고 있다.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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