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연암 박지원(朴趾源)
아! 아! 연암 박지원(朴趾源)
  • 승인 2013.01.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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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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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장난삼아 세칭 삼류시인에게 우리나라 십대(十大) 시인을 꼽아보라 주문하면, 망설이지 않고 그 무명시인은 자기를 ‘베스트 텐’에 틀림없이 포진시킨다.

시를 잘 짓든, 잘 못 짓든 시인의 콧대는 에베레스트 최고봉보다도 엄청나게 높다.

우리나라 개국 이래 자칭 타칭 문인들이 역사무대를 활보했지만 과연 누가 우리나라 역대 지존의 문호일까?

율곡 이이 선생은 어떨까? 소과(생원 진사과), 대과(문과), 중시(重試)의 각각 1, 2, 3차의 시험, 아홉 번의 시험에서 모조리 1등 합격, 장원(壯元) 급제를 하여 조선시대 유일의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 되었다.

암기력과 문장력이 출중하고 20대에 소과와 대과에 장원랑이 되었다.

대과에 출제된 문제 해답이 현존하고 있는데, 장원급제자 답안답게 최고의 명문장과 명쾌한 대책을 제시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최고의 문호는 암기력도 우수해야 하겠지만, 작품에 나타난 탁월한 창의성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문호는 누구일까? 사람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분명히 만인이 공감할 정답이 꼭 있다고 확신한다.

‘욕설모서당’ 등 걸쭉한 풍자시를 잘 뽑던 김삿갓 어른은 아닐까. 기발한 내용이 감칠맛은 끝내주지만 아무래도 무게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단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최대의 문호는 연암 박지원 선생임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조선시대 사람의 평균 수명은 24세에 불과하다. 연암 선생은 1737년 서울에서 탄생하시고, 1805년에 영면하셨으니 만 68세를 누리셨다. 평균 수명보다 44년을 더 사셨으니, 당시로선 장수한 셈이다. 서울 야동에서 태어나시고 신체가 건장할 뿐 아니라 천성이 매우 영민하셨다.

할아버지가 의도적으로 글(한문)을 안 가르쳤는데, 장가를 가고 처 당숙이 연암의 싹수를 알아보고 비로소 글을 가르쳤다.

학업성취가 초고속으로 이뤄져 1765년에 첫 과거를 봤는데 과거와 연띠가 안 맞았든지 쓴잔을 마셨다.

그때부터 과거는 과거로 돌리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고 이용후생의 실학에 정진하여 북학파의 원조가 되었다.

3종형 박명원이 연행사로 가게 되어, 연암은 서장관(기록책임자)으로 청나라에 4개월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강한 풍자성과 법고창신의 참신한 정신도 청나라에 가서 견문을 넓혔기에 더욱 빛을 보았을 것이다.

활발한 풍자소설 창작과 실학연구, 제자 양성으로 연암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지고 현군 정조까지도 익히 아는바 되어,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도 선공감 감역관(종9품)으로 발탁되었으니 1786년의 일이다.

직무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아 1792년엔 안의현감(종6품), 1797년엔 면천군수(종4품), 1800년엔 양양부사(종3품)에 올랐고, 사후에 좌찬성(종1품, 부총리급)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도공으로 추서되었다.

함양군 안의현감 시절엔 수차(水車)를 만들어 논물대기에 편익을 제공하고 현민 ‘함양박씨 열녀전’을 지어주어 애틋한 청상과부의 한생을 조명하기도 했다.

뒤늦게 관계에 발탁이 됐지만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의 수령이 되어 잊지 못할 고마운 고을원으로 지역민의 가슴에 영생하게 됐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벼슬로서만 관찰하는 것은 수박겉핥기의 저차원이다. 연암은 참신한 한문소설을 지어 우리나라에도 탁월한 문호가 있음을 깨우쳐준 대단한 문학의 선각자요 선구자이시다.

연암이 지은 ‘호질문’, ‘허생전’, ‘양반전’, ‘민옹전’, ‘광문자전’, ‘예덕전’, ‘김신선전’, ‘함양박씨 열녀전’ 등은 한문으로 쓰였지만 한글작품보다 더 한국적이어서 연암의 한문소설은 진작부터 국문학 작품으로 정중하게 대접받고 있다.

먼저 ‘호질문(虎叱文)’은 부패한 선비와 바람난 열녀의 부끄러운 사랑을 꼬집은 것인데, 열녀 동리자 아줌마는 실존 인물로 밝혀진바 없지만 1만5천권을 지었다는 북곽 선생은 ‘송자대전’을 지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라고 비정하는 설이 유력하다.

호질문의 옛날 정읍(鄭邑)이라는 나라가 송시열이 사약을 받은 정읍(井邑)과 일치하고 있다.

허생전의 주인공은 토정 이지함이라 하는 추정이 우세하나 필자는 조선 정조 때 제주도 여걸 김만덕을 어생전의 모델로 생각한다.

실제로 김만덕은 여성 거상으로 제주도 말총을 육지로 내다팔아 큰돈을 벌었고, 평생 모은 돈으로 구휼미를 풀어 제주도 기민을 구제한 것이 허생의 업적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명작소설은 작자의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실제로 모델이 있는 경우가 많다.

‘광문자전’의 광문은 일제 강점기의 김두한 소년과 비슷한 점이 있으니 명작은 후세까지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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