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의 습성을 닮은 아이들
후조의 습성을 닮은 아이들
  • 승인 2013.02.12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대구 중리초등학교 교장
졸업과 수료의 계절이다. 졸업의 원래 의미는 정해 놓은 교과를 마치거나 학과 과정을 전부 마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단서가 붙는다. 어떤 부문의 기술이나 학문에 통효(通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통효란 ‘환하게 이해하여 앎’이다. 안다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은 배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배움이 통효했으니 일정한 규정을 마쳐도 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유치원 아이들의 졸업식과 수료식을 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원아가 12명이어서 참석한 학부모도 많지 않아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내용이 너무 알차고 옹골져 사람들이 모두 찬사를 보내고 또 보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졸업과 수료’에 대하여 물었다. 졸업은 초등학교에 가는 것이고, 수료는 유치원에 한 번 더 다녀도 되고 안 다녀도 된다고 말한다.

스스럼없이 말하는 원아들의 진지한 모습이 짜릿하게 뇌리에 남는다.

시인 이정록은 항상 어머니와의 대화를 소재로 삼아서 진솔한 내용을 시로 썼다. 학부모들에게는 ‘어머니 학교’의 시집 내용처럼 진정한 사랑은 자식과의 대화에서 사랑이 묻어나고 자라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특정 부유계층이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가정이 아니면 보내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유치원을 ‘누리과정’으로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후조는 철새를 말한다. 학생들은 2월이 되면 어김없이 학교를 떠난다. 졸업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은 교정을 벗어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여 사회로 진출한다.

각종 지침은 희망적이고 진취적이며 아이들이 함께 즐기는 졸업식을 하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신선함을 느끼는 졸업식이 입안자들에게는 쉽지만 학교의 실행자들에게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오륙십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장, 전면 막 좌우에는 반디와 눈사람이 붙어 있었다. 반디는 한자어로 형(螢)이고 눈은 설(雪)이다. 지독히 가난한 차윤은 반디불빛으로 공부했고, 손강은 눈빛으로 공부하여 성공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를 형상화한 것이다. 6년 동안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끈기로 견디어 내며 학문을 닦은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교장선생님의 회고사에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고사가 많았다. 따뜻한 강남의 귤이 추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이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데, 졸업을 하더라도 착한 사람이 되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환경이 바뀌더라도 지금까지 쌓은 공덕을 헛되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이다.

답사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당부의 이야기가 많았다.

‘이제 머잖아 ○○의 교정에도 봄이 오겠지요. 6년 동안 정들었던 교정을 …….’ 등으로 시작하는 떨림의 답사에는 식장에 참석한 내빈과 학부모들에게 심금을 울렸던 듯하다.

훌쩍거리는 내용이라고 모두가 퇴폐적인 것은 아니다. 마음을 잔잔히 울려 흐느낀다고, 버려야 할 낡은 관습은 절대 아니다.

뒤풀이 하는 것이 문제였다. 교모를 찢고,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친구 얼굴에 황칠을 하고, 바지와 옷을 벗기고, 술을 먹고 추태를 부리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일들이 영웅시 되어, 나에게는 졸업이 거대한 행사일지 몰라도 남에겐 위협적이고 얼굴 찌푸리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졸업은 통효라고 하는데, 이제는 쌓은 지식으로 지혜를 만드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올해는 계사년(癸巳年)이다. 원래 뱀이란 ‘배(腹)로 움직이는(動) 동물’이다.

사족이란 말은 발이 달린 뱀이다. 사족(蛇足)은 원래 화사첨족(畵蛇添足)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뱀을 그리는데 뱀의 발까지 그리는 것을 말한다. ‘사족을 단다.’는 말은 안 해도 될 일을 쓸데없이 덧붙여서 하다가 본래의 일까지 그르친다는 말의 뜻도 있다.

뱀을 멋지게 보이게 하려고 발을 그려 사족을 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철새의 습성을 닮은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졸업식, 지혜의 가르침을 선사하는 축하의 장이 되면 좋겠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