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의 소리
한 손의 소리
  • 승인 2013.02.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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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인도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백제를 통해 일본에 불교가 전파된 이후, 불교와 국가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일본의 역사를 형성해 왔다. 또한 불교는 역사 중에 신도와 결합하여 점차 신불습합(神佛習合)을 이루어 갔다. 그러나 1868년 1월 막부시대를 끝내고 정교일치의 왕정복고를 선언한 메이지정부는 신불분리(神佛分離), 폐불훼석(廢佛毁釋)의 정책을 내걸고 신도(神道)를 국가종교로 승격시키고 불교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탄압했다. 일본불교 역사상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가혹한 탄압 속에서 일본불교가 살아남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바로 조용한 천둥(默雷)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시마지 모쿠라이(島地雷, 1838~1911) 선사이다.

그는 1838년 야마구치현(山口縣)에 있는 정토진종 본원사파에 소속된 전조사(專照寺)에서 태어났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이란 13C의 신란(親鸞)을 개조로 한 종파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名號)를 기리는 것에 의한 중생의 구제를 종지로 한다. 쿄토를 거점으로서 세력을 늘려 에도시대에는 일본 유수의 종파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서본원사(西本願寺)를 중심으로 하는 본원사파(本願寺派)와 동본원사(東本願寺)를 중심으로 하는 대곡파(大谷派)로 나누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쨌든 시마지 모쿠라이의 깨달음은 고행 속에 진전을 이루었다. 12세 때 출가하여 들어간 작은 절은 신자도 있고 전답도 있어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주지가 공부를 즐기지 않아, 모쿠라이가 독서를 하면 꾸짖고, 게다가 책을 치워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남긴 후 그 절을 나와, 쿠마모토현(熊本縣)에 있는 누세교(累世校)라는 정토진종 승려를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돈이 없어 남의 책을 빌려 필사하거나 또는 부탁을 받고 필사해주며 근근히 학업에 임할 수 있었다.

정토진종 본원사파(淨土眞宗 本願寺派)의 승려로 성장한 모쿠라이가 켄닝사(建仁寺)의 주지로 있을 때, 그에게는 도요라는 이름을 가진 동자승이 있었다. 그의 나이는 모쿠라이가 출가한 나이와 똑같은 겨우 열두 살이었다. 어린 도요는 나이 많은 제자들이 아침저녁으로 스승의 방을 드나들면서 삼천(三千)에 대해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마음의 방황을 끝나게 해줄 수 있는 화두를 개인적으로 받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도요도 삼천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모쿠라이 스님은 “좀 더 기다리도록 해라. 너는 아직 어리다.” 그러나 도요는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결국 모쿠라이 주지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어린 도요는 적당한 때를 보아 모쿠라이 스님의 삼천실 문간으로 갔다. 그는 징을 두드려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문 앞에서 공손히 세 번 절을 올리고, 스승 앞으로 나아가 단정하게 앉아, 모쿠라이의 화두를 기다렸다.

모쿠라이 선사가 말문을 열었다. “너는 두 손을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 손의 소리를 들려다오” 도요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스승이 내려 준 화두를 꼼꼼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때 마침 창문 밖에서 기생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바로 저거야!” 그가 소리쳤다. 다음 날 저녁, 도요는 스승을 찾았다. 모쿠라이 선사가 그에게 한 손의 소리를 설명해보라고 하자, 도요는 기생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던 모쿠라이 선사는 말했다. “아냐, 그게 아냐. 그게 어떻게 한 손의 소리란 거냐? 너는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구나”

기생들의 노랫소리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도요는 거처를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명상에 잠겼다. “한 손의 소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앗, 이제야 알겠다” 그러나 그날 밤 또 스승을 찾은 도요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스승의 꾸지람은 들었다. 그후 도요는 ‘바람 스치는 소리’, ‘부엉이 우는 소리’, ‘메뚜기 소리’를 들고 스승을 찾았지만 여전히 거절당했다.

그는 명상에 잠겼다. “도대체 한 손의 소리란 어떤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또 거듭해도 도요는 한 손의 소리를 알 수 없었다. 도요는 거의 일 년 동안 ‘한 손의 소리가 무엇일까?’ 로 고민하며 보냈다. 결국 어린 도요의 생각은 고뇌가 되고, 고뇌는 정신의 통일을 이끌었다. 결국 도요는 고요한 명상을 하기 시작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모든 소리를 넘어서게 되었다. 드디어 도요는 한 손이 내는 소리란 무엇인가 생각을 하면서도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훗날 도요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모든 소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할 소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 소리가 없는 소리에 도달한 거지요. 결국 나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비로소 도요는 선(禪)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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