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은행나무가
옆집 은행나무가
  • 승인 2013.05.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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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一香시인
바로 옆집 담장 안에는

내 나이도 훌쩍 넘어 보이는

키 큰 은행나무가 월담을 해서

밤도 낮도 없이 내방을 기웃거린다

전생에 내 신랑감이라도 되었던가

은행나무는 암숫이 눈이 맞아야

열매를 맺는다는데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여자이기나 할까마는

누구하나 찾아와서 창을 두드리지 않거늘

슬금슬금 내 침실을 훔쳐보는

은행나무가 마냥 싫지는 않다

가을이 되어서 황근관에 곤룡포를 입고

어깨를 떡 벌리고 서서

“이래도 나를 모르겠느냐”

큰 호령을 하기도 하고

잎이 다 진 빈가지에 달빛을 얹고

그림자만 기웃거리기도 하는

옆집 은행나무와 남모르는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어느새 나도 은행나무도 나이를 먹고 있다


▷▶대구 출생. 1983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기도의 섬’, ‘기대어 사는 집’ ‘구름해법’ 등 12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윤동주문학상, 노산문학상, 정운(丁芸) 정운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한국펜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수상. 현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및 여성문학회 자문위원.

<해설> 내 영역의 경계 너머에 있는 그대와 함께 늙을 수 있다는 거, 은밀한 사랑 놀음이다.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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