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길도 속곳을 다 차려입고 흐른다지요 활에서 튕겨나간 힘찬 화살도 마지막엔 비단조차 뚫기 어렵다지요 아파트 천정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보자니 흐르는 저 아래가 아무래도 빤스 끈을 놓쳤나 봐요
허구한 날 새 날개에 매달린 편지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긴 하지만 내 시가 고장이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가령 내 시의 어떤 분노이거나 따뜻함이라 해도 괜찮을 팽창이 네게로, 네 것은 내게로, 옆구리에서 시린 옆구리로, 穴을 메웠다가 穴을 벌어지게도 하는, 쪼개 먹는 삶, 지구통이 순배순배 뜨거워지는 이유 말입니다
일언도 없이 물이 새는 것을 보자니 요 말썽들을 나누어야겠다고 나는 관리실 소장을 찾아 갑니다 소장은 보일라실 실장을 부릅니다 실장은 보일라실 보조를 부릅니다 말이 입구에서 옆구리로 갔다가 시린 아랫도리로 내려갑니다 중심 잃은 구멍에선 물에다 빤스 입혀! 빤스 입혀! 라고 외치는 데 말입니다
▷▶대구출생. 1999년 작가세계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구작가회의 부회장, 2009년 대구문학상 수상, 시집:평화의 속도.
<해설> 일언의 시초는, 그 마음은 詩를 낳아서 그것은 또한 따뜻해져서, 네게로, 시린 옆구리에 가 닿고, 결코 역순하지고 않고, 가끔은 허한 구멍을 단단히 틀어 막기도….. 김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