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유관순 이야기, 17세 소녀의 옥중 마지막 1년
항거: 유관순 이야기, 17세 소녀의 옥중 마지막 1년
  • 배수경
  • 승인 2019.02.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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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감옥 8호실 이야기 초점
흑백영상으로 인물 감정 극대화
엔딩크레딧서 수감자 사진 공개
마지막까지 먹먹한 여운 선사
항거-유관순이야기
 

올해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7일 개봉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는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마지막 1년여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영화 ‘항거’ 속 유관순은 17살이다. 17살, 지금으로 치면 한창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엄마, 아빠에게 투정 부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나이다. 영화 속 유관순(고아성) 역시 수감생활 중임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해맑고 장난기 어린 얼굴을 보여준다. 열사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화는 어떻게 평범한 소녀가 열사로 변해가는지,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영화 ‘항거’는 회상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이 흑백이다. 관객을 위한 배려인 듯 보이지만 흑백 화면이라고 해서 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컬러 화면이었다면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외면했을 장면들을 눈 앞에 펼쳐놓으며 그때 그 시대의 상황을 더욱 아프고 처절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입을 틀어막고 숨 죽이고 보면서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고문 장면도 충분히 힘들지만 실제로 행해졌던 고문은 더욱 처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관순이 처음 형무소에 도착해서 8호실의 문을 열었을 때 맞닥뜨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3평 남짓한 공간에 30여명의 여성을 수용해 놓은 방은 빈틈없이 가득찬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연상케한다.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그녀들은 시간을 정해 번갈아 누워자고 나머지 시간은 방안을 걸어다닌다. ‘아리랑’이나 ‘애국가’를 부르고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를 외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주동자로 지목되면 처절한 고문을 당해야 한다.

수감생활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실제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벌어진 아우내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은 단편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죄수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유관순의 모습에서 “나는 의병군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을 하는 중이며 그 일환으로 이토를 죽였다. 따라서 나는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다”라고 외쳤던 안중근 의사도 떠오른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당장 독립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서 그런 희생을 하냐고. 영화 속에서도 유관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라고. “그럼 누가 합니까?”라는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말은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크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영화 ‘항거’는 엔딩크레딧까지 놓치지 않고 봐야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부르는 ‘석별의 정’과 함께 실제 서대문 형무소 여자 8호실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의 사진이 하나씩 하나씩 등장한다. 영화가 끝난 뒤 여운을 충분히 느끼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사람이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고문에 가담했던 니시다(류경수) 같은 인물들이 해방 후에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 사람에게 다 술을 따라도 왜놈에게는 술을 따르지 않았다는 수원기생 김향화(김새벽),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다방 종업원 이옥이(정하담)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 3.1운동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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