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낙태금지는 위헌”
“임신 초기 낙태금지는 위헌”
  • 강나리
  • 승인 2019.04.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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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66년만에 법 개정 결정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성단체 “당연한 결과” 환영
종교계 “생명 경시 심화 우려”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헌법재판관 연합뉴스
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재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헌법재판관 연합뉴스

 

임신 초기단계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는 현행 형법상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낙태죄는 1953년 형법에 규정된 지 66년 만에 사라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참고)

헌법재판소는 11일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현행 법 조항(자기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은 단순위헌, 2명은 합헌 의견을 내 헌법불합치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2012년 헌재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한 지 7년여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자기낙태죄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며 “현행법(모자보건법)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 시술을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형법 270조 ‘동의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이같은 결정이 나오자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등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일부는 생명 경시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대구지역 여성단체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11일 성명서를 내고 “그동안 국가는 여성들의 임신중단 결정을 단죄함으로써 여성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이자 폭력을 자행했다”며 “66년간 형법에 존재했던 낙태죄에 대한 이번 결정은 국가가 발전주의를 앞세워 여성의 몸을 인구 통제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삼았던 지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을 억압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들 모두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와 정부는 젠더 관점의 성교육을 포함해 안전하게 성적 권리를 누리고 피임,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한 정보와 보건의료시스템에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해온 가톨릭 등 종교계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입장문을 통해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한 여성과 남성이 용기를 내 태아의 생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법과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 입법부·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민수 계명대 기독교학과 교수도 “이번 판결은 생명존중권보다 국가 또는 개인의 결정권이 더 앞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함부로 하는 게 맞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낙태한 여성이 처벌과 낙인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진숙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생명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낙태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전담하는 부조리에 일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문제를 이제 여성의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낙태죄가 폐지되면 생명을 경시하거나 낙태가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낙태를 개인의 죄로 단정짓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했다.

강나리·장성환·정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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