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외나무다리에서
[좋은 시를 찾아서] 외나무다리에서
  • 승인 2023.08.31 19: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연순 시인

기린과 사자가

만났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두려움을 외나무다리에 단단히 의지한 채

먼저 서로의

눈을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누가 더 아픈지

슬픈지

위태로운지

그래야

둘 다 산다

◇한연순= 정읍 출생. 2000 ‘조선문학’ 시 등단. 조선시문학상, 인천 펜문학상, 인천문학상 수상. 2021년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방치된 슬픔’(2002), ‘공기벽돌 쌓기 놀이’(2006), ‘돌담을 쌓으며’(2008), ‘분홍 눈사람’(2021)이 있음.

<해설> 해학과 禪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다. 이 시에서 외나무다리는 현실이고 눈은 결국 시인의 정신일 것이다. 아니 그 무엇으로 해석해도 된다. 외나무다리가 그렇고 목이 긴 기린이나 이빨이 사나운 사자가 아니어도 다리의 난간 아래는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어떤 사회의 잘못된 구조 속에 우리는 길이 든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나와 경쟁자로 느껴지는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쁜 비하의 습성이 생겨나는 건 아닌지, 인정할 건 인정하는 정도만 되어도 둘 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더 슬픈지, 아픈지, 위태로운지를 안다면 그게 바로 둘 다 살아남는 방법이라 이 시는 알려준다. 상대의 눈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서는 억지와 아집의 내 눈을 먼저 맑게 씻고 볼 일이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