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에 취하고서 동굴 속 들어간다
위 벽은 울퉁불퉁 그 길을 지나가면
투명한 소실점에는 내 마음이 보인다
[우수상 수상 소감] 엄세원 “빛과 그림자, 그 너머를 담는 일”
길 위에 서면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백팩을 멥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어안렌즈가 돌아갑니다. 계절마다, 날마다, 순간마다 대상은 얼굴을 바꿉니다. 뿌리에서 바닥을 거쳐 점차 초리까지... 그 안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버려진 껌이 아스팔트 위에서 밟히고 밟히면 그림이 됩니다. 최애 대상은 플라타너스 나무. 껍질을 벗은 그림은 한 편의 동화입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걸치고 셔터를 누릅니다. 그림자가 질까 봐 잠시 우산을 내립니다. 공원의 풀들은 초록이거나 갈색이거나 눈, 비를 맞았거나 저의 좋은 피사체입니다. 수크령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탕후루보다 더 달콤합니다. 만보 걷는 길 위에서 셔터를 누를 때마다 온몸이 짜릿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빛과 그림자와 물방울과 그 너머의 사는 얘기를 담습니다. 삼 개월 전부터 디카 시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몇 편씩 꾸준히 썼습니다. 사진과 글의 조화와 그것의 정형화는 어려웠습니다.
재미있는 일에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과 대구신문에 감사드립니다.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는 남편 이승한, 두 아들과 함께 대구로 여행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