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스님들 노닐던 자취 물 속에 간직한 천년고찰
옛 스님들 노닐던 자취 물 속에 간직한 천년고찰
  • 김광재
  • 승인 2019.01.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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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오어사
오어사 이전 ‘항사사’라 불려
이름 바뀐지 1천300여년 지나
천왕문 턱 밑까지 물에 잠겨
고려 고종 3년에 주조된 동종
화재·전란에 강바닥에 묻혔다가
저수지 준설작업 중 우연히 발견
오어사-다시
오어사 전경.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오어사(吾魚寺), 우리말로 풀면 ‘내 물고기 절’이다. 이렇게 특이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원효, 혜공 두 스님의 일화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대체로 두 스님이 물고기를 먹고 눈 똥이 물고기가 되어 살아 움직이자 ‘저 고기가 내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어사로 불리기 전에는 절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였다고 한다. ‘항사’는 항하사의 준말로 항하(恒河) 즉,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이다. ‘항하사’는 불경에서 아주 많은 수를 나타내는 말로 자주 쓰인다. 아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의 외진 마을 이름이 ‘갠지스강의 모래’라니 그 유래가 궁금해진다.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항사사는) 지금의 영일현 오어사인데, 세속에서는 항하사처럼 많은 사람들이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항사동(恒沙洞)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절도 생기기 전에 마을에서 출가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 같다. 이 절을 창건한 스님이 절터를 휘돌아 흐르는 신광천의 아름다운 흰 모래를 보고 갠지스강이 떠올라 항사사로 절 이름을 지었고, 그에 따라 절 아래 동네 이름도 항사동이 됐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겠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조각승 상정의 수작을 꼽히는 오어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공기가 맑아진 만큼 바람이 차가워진 날 오어사로 향했다. 개보수 공사 중인 오어저수지 둑을 지나 오어사 진입로를 따라 원효교, 혜공교, 일주문을 거쳐 오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진입로는 1961년 절 아래쪽 신광천을 막아 저수지를 만든 뒤, 새로 닦은 길이다. 옛 스님들이 노닐던 자취와 ‘갠지스의 모래’들은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다. 항사사에서 오어사로 이름이 바뀐 지 1천300여 년이 지나 천왕문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 것이다. 하기야 물고기에겐 모래보다 호수가 더 잘 어울린다.

겨울철 평일이어서 절 옆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올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이었다면 못둑 아래 주차장에서 걸어와야 했을 것이다. 오어사 주차장에서 저수지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출렁다리의 이름도 원효교다. 단청문양을 그려 넣은 주탑이 멋스럽다. 이 다리를 포함해 오어지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 7km가 조성돼 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둘레길 걷기는 봄꽃 필 때나 단풍 들 때를 위해 아껴놓기로 했다.

 
오어사동종1
오어사 동종의 용뉴와 용통.


오어사 대웅전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지어진 건물이다. 나뭇결 속으로 녹아 들어간 듯한 빛바랜 단청을 올려다보는데 추녀 끝 풍경이 뎅그렁뎅그렁 울린다. 정성 들여 깎은 꽃 문살도 시선을 한참 동안 붙든다. 대웅전 안에는 1765년 조각승 상정 등이 조성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천장과 닫집, 공포의 조각과 그림들도 볼만하다. 화려하지만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대웅전을 둘러본 뒤 유물전시관에서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을 만난다. 고려 고종 3년(1216)에 주조된 종이다. 1995년 오어지 상류 준설작업 중 굴착기 기사가 발견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동화사 순성대사가 도감을 맡아 장인 순관으로 하여금 300근의 종을 만들게 하여 오어사에 달았다고 종에 새겨져 있다. 유리 상자 안에 들어있는 종의 높이는 1m가 채 되지 않는다. 비천상과 용뉴를 비롯한 각종 장식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보존상태도 좋아 가까이서 찬찬히 뜯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오어사대웅전
오어사 대웅전.


언제 어떻게 이 종이 묻히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재나 전란으로 강바닥에 묻히게 됐거나 난리 통에 누가 종을 훔쳐 가려다 도중에 버리고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수지 준설작업 덕분에 종을 찾게 됐으니, 이것도 참 묘한 인연인 듯 싶다.

18세기의 기록에 오어사에는 자장암, 원효암, 혜공안, 의상암, 은적암 등 다섯 개의 산내 암자가 있다고 적혀있지만, 지금은 오어사 뒤편 절벽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자장암과 오어사 서쪽 계곡 6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원효암 둘만 남아있다.

자장암은 주차장에서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저 꼭대기에 어떻게 집을 지었을까 의아해지는데, 올라가서 보면 반대쪽으로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근래에 지은 건물들은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지만, 벼랑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어사 풍경은 가슴을 틔워 준다.

원효암 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돌과 삐죽삐죽 솟은 나무들이 외롭고 쓸쓸하다. 원효암 돌담을 돌아 마당에 들어서니 스님이 처마 밑 의자에 앉아 햇볕 바라기를 하고 있다.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낸 돌과 나무들,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막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새잎이 나고 짙어지고 물드는 계절에 다시 이 숲길을 걷는다 해도, 쓸쓸한 겨울의 기억을 밀어내지는 못할 것 같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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