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상하이·뉴욕처럼…“대구, 마카 디비라”
기사회생 상하이·뉴욕처럼…“대구, 마카 디비라”
  • 이대영
  • 승인 2019.02.06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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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개방개혁 시작한 상하이
거리 곳곳 취객들 토·용변 자국
“천지 개벽해도 안변할 것” 절망
현재 연평균 10% 경제성장 보여
뉴욕, 1990년까지 범죄의 도시
시장 바뀌며 ‘범죄와 전쟁’ 선포
‘행복지수 높은 도시’ 거듭나
대구 변화, 일회성 이벤트 아닌
신택리지-2월분
이대영 소장이 그리는 대구.

 

이대영의 신대구택리지 (6)함께 부르자! 대구의 랩소디

△대구의 보습경제론((Daegu’s Plowshares Economics)을 디자인하자

앞서 시베리아철도(Trans-Siberian Railway)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미 1897년 유라시아 대륙철도가 개통되었기에 1907년 4월 22일 이준(李儁,1859.12.18.~1907.7.14) 열사가 고종의 밀서를 품고 이 철도를 타고 평화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다. 1929년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소설 ‘유정(有情)’의 주인공 최석을 찾아 바이칼 호수까지, 1936년 손기정((孫基禎, 1912~2002) 선수는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고자 부산에서 시베리아철도를 탔다. 뿐만 아니라 1934년 만주사변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조선독립군기지 토벌계략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했던 고려인들을 러시아정부와 합동작전을 전개해 1937년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분산 이주시킬 때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했다.

유라시아 보습철도는 보습모양의 철도망만이 아닌 i) UNESCO에 등록된 유·무형문화재를 기반으로 제2의 한류문화의 모태를 형성하고, ii) 경북도청 이전 터를 중심으로 가칭 국제문화교류센터를 중심으로 문화관광 및 교육의 센터로 기능을 자처하고, iii) 새로운 대구의 보습경제를 발아시켜 유라시아를 경제권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야심작으로 디자인하자.

대구보습경제론으로 채워야 할 내용물을 모색해보면 적어도 지향해야 할 사항으로 i) 유라시아의 놀이마당(Play Field), ii)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과 의료(Life), iii) 선진치유산업과 기능을 바탕으로 한 수술(Operation) 센터, iv) 현재 대구가 지향하고 있는 물산업과 물의 도시(Water City), v) 대구에만 있는 대구맞춤 서비스(Daegu-specific Service), vi) 대구에 오는 모든 사람의 심장을 녹아내리게 하는 인정의 도시(Heart-Felt City), vii) 오페라시설 등을 활용한 예술도시(Art City), viii) 제4차 산업의 로버트와 드론산업을 접목(Robert & Drone Industry), ix) 청정한 자연환경의 쾌적한 도시(Environment)로 승부수를 낼 수 있다.



△상하이·뉴욕에서 답을 찾자

상하이 시청직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1842년 서방열국의 조차지로 상하이가 넘어갔고, 공산당 활동근거지로 전락됐다가, 1970년에 등소평(鄧小平)의 개방정책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개방개혁을 시작했다. 1985년 상하이시장 장쩌민(江澤民)은 “천지가 개벽해도 상하이는 절대로 안 변해! 80세 노망난 할망구 같다고요”라고 했다. 당시 가로변에는 취객들이 토하고 싼 용변을 유기견공들이 포식을 하고 있었다. 골목마다 ‘토하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고, 집집마다 매일아침 내다버리는 것이 300만 통이 넘는 게 똥통이었다.

1990년대 한국과 국교정상화가 되었기에 1994년 상하이를 여행할 기회가 있어, 10월에 며칠간 들러봤다. 가장 눈에 뛰는 건 ‘상하이를 위해 뭘 하시겠습니까’라는 붉은 색깔의 깃발이었다. 마치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의 ‘나라가 뭘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나라를 위해 뭘 할 것인가를 물어보세요’라는 연설문이 연상됐다. 이후 10년이 지나고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는 북한지도자 고(故) 김정일의 말처럼 천지개벽이었다. 한마디로 ‘노망난 80세 할망구가 아니라 18세 꽃 미녀로 변신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2005년 12월 가로등주마다 수능시험 격려현수막으로 ‘날아라! 더 높이, 달려라! 더 멀리(飛得更高, 走得更遠)’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서 닿았다. 이제 상하이는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승천하는 황룡’ 중국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어제 상하이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말은 ‘상해를 떠나 6개월 만에 오면 집을 못 찾겠다’는 소리였다.

한편 1990년까지 뉴욕은 영화 ‘배트맨(Batman)’에 나오는 범죄의 도시 고담이었다. 그러나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 L. Giuliani, 1944년생)가 뉴욕시장에 취임하면서 ‘깨어진 유리창(Broken Window)’을 틀어막겠다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위대한 힘은 크게 책임을 지는 데서 나온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영화 ‘스파이더맨(Spider Man)’의 대사처럼 무거운 책무를 시작했다. 그는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약속을 이행했다. 낙서 지우기, 쓰레기 단속하기, 지하철 강도 및 교통질서 지키기를 실시했고 상황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범죄는 급격히 떨어졌고, 2000년 뉴욕은 ‘빅애플(Big Apple)’, ‘아이 러브 뉴욕(I♡NY)’ 그리고 ‘천사의 도시(City of Angel)’란 범시민참여 캠페인을 줄기차게 전개해 매끈하게 끝마무리를 했다. 그 결과는 오늘날 행복지수가 높은 도시로 거듭났다.



△미친 짓 하지 말고, 다함께 미친 듯이 하자!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종교계를 시작으로 ‘내 탓이오(Culpa Mea)’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탈무드(Talmud)는 ‘험담은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당하는 사람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고, 2천여년 전 로마 시인 클라우디우스(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BC10~AD54)는 ‘험담은 개의 웅변이다’라고 했고, 공자(공자, BC 551~479) 는 ‘개가 짖는다고 어찌 따라 짖을 수 있겠나(犬吠而人胡吠)’라고 했다. 대구청년회의소(JCA)에선 ‘남의 말 좋게 합시다’ 차량 스티커를 제작해 배부했으나 국제행사가 끝나고 꼬리를 감추었다. 지난 2000년 M시장은 대구섬유산업을 21세기 첨단·고부가 산업으로 혁신시켜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밀라노 프로젝트(Milano Project)를 시작했다. 대구는 이렇게 세계적인 패션산업도시로의 성장을 꿈꾼 적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방법론이다. 관주도(官主導)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45)이 ‘미친 짓, 똑같은 일 만을 거듭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이라고 했던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대구가 과거처럼 또다시 30년 지난 레코드를 틀어서야 누가 호응을 하겠으며, 상하이나 뉴욕처럼 기사회생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제 그럴려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메뚜기’라는 이름의 두바이(Dubai)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 1949년생)가 “필요하다면 두바이 전체를 다 뒤집어라” 외쳤던 것처럼 대구는 “만년 꼴찌, 마카 디비라(모두 뒤집어라)!”라는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영화관객이 다 함께 미친 듯이 떼창(sing along)을 하듯이 대구 모든 시민이 다 함께하는 대구의 랩소디(Daegu Rhapsody)를 불러야 한다. 미친 짓거리를 하지 말고, 미친 듯이 다 함께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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