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이름이 빛나는 까닭
선생님의 이름이 빛나는 까닭
  • 승인 2014.09.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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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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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장
지난 달 8월에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다. 이해인 수녀의 시구를 빌리자면 “길 위에서 길이 되시고 집 밖에서 집이 되시어 모든 이를 끌어안는” 그 분이시기에 종교인이든 아니든 마음에 평안과 울림을 얻는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 남을 위해 우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고 사랑의 길에서도 실천이 더딘 우리에게 앞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라”고 하신 그 분이 다녀가셨기에 우리들 마음에 한동안이나마 정화되는 그런 기분이 남아 있다.

교황님이 다녀가시던 8월에 남편은 40년 교직생활을 마치는 퇴임식을 했다. “교사의 최고 권위는 인격이요, 최선의 교육 방법은 사랑”이라며 제자에게는 사랑을, 동료에게는 섬김을 실천했던 남편이기에 퇴임식 때에도 교직원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식사 한 끼 대접하자며 우리가 마련한 전원주택 잔디밭에서 출장 뷔페를 불러 손님들을 맞기로 했다. 손님도 범위를 좁혀 청했다. 지역 주민 어르신들에게 신고식 겸 현재 몸담고 있는 학교의 교직원들과 친척들만 모시고 조촐하게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초임 시절 제자들이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며 참석하겠다고 했다. 제발 몸만 다녀가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마흔 아홉, 쉰을 바라보는 제자들이라 이제는 초임 교사 시절 선생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자기네들 결정 사항이라며 기념식수로 큼직한 반송 한그루를 보내왔다. 마땅히 심을 자리도 없지만 3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까지 선생님으로 기억해주는 그 뜻이 너무 고마워 대문 앞에 있던 향나무와 유카, 유실수를 뽑아내고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자리에 흙을 돋우고 그들이 보낸 반송을 심었다. 그랬더니 퇴임식 날 표석에 「이재진 선생님 정년퇴임 기념/청계초 30회 제자 일동/2014년 8월 28일」글자를 새겨와 자기들 손으로 표석을 놓았다. 휴일도 아닌데 군인, 기업인, 사회인으로 몸 빠져나오기 힘들고 바쁜 평일에 옛 초등학교 때 선생의 정년 퇴임식에 참석하려고 서울, 부산 등 먼 거리에서 찾아와준 제자들이라 그 곱고 순수한 마음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아!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빛나는 것은 세월이 가도 제자들 마음 바닥에 흐르는 존경과 따스한 기억 때문이리라.

이날 오전에 남편은 시교육청에서 대통령 훈장도 받아왔지만 그 훈장보다도 제자들이 찾아와 심어준 「이재진 선생님 정년퇴임 기념」표석이 더 위대해보였다.

그동안 그려온 남편의 유화와 조각품들을 잔디밭에 빙 둘러가며 전시해두었다가 행운권 추첨으로 작품을 나누어 주고 동양화를 그린 합죽선에는 교직원들과 제자들의 이름과 덕을 기리는 문구를 적어 하나씩 들고 가도록 부채 전시회도 하였다. 제자들과 교직원과 뜻 깊은 기념 촬영을 하고 떠나보내며 이제는 그들한테 무한으로 받아온 존경과 애정에 걸맞게 주위에 더 많이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집 이름을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으로 정해 현판을 걸어두었다. 대구에서 40~50분 걸리는 농촌에 있는 황토방이지만 660평 정원에는 소나무와 각종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평생 아이들을 돌보던 남편이 이제부터는 이 나무들을 돌보며 그동안 미루어왔던 작품 활동도 충실히 할 것 같다. 이제 이 집에는 지인들이 와서 하룻밤 묵으며 편안하게 쉬고 가거나 작품 활동을 함께 할 것이다. 아동문학 동호인들도 드나들면 문학 기행을 오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한 마디씩 들려주는 공간이 될 것도 같다. 그리 머지않은 곳에 <들꽃마을>이 있는 것도 축복이다. 자주 드나들며 나누며 살아라는 하느님의 게시이리라. 들판에 곡식들을 키우며 결실을 기다리는 농촌 사람들에게서 기다림의 미학과 느림의 미학도 배우게 되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영혼이 될 것도 같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들을 위해 일하고 사랑의 길에서 용기 있는 실천을 하며 제자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선생님으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인칼 메닝어 박사가 “산과 호수 등 자연은 현대인의 초조와 불안을 치유해준다”고 했다지만 우리는 박사가 아니어도 안다. “자연이 가르치는 길을 따라 가라”는 장자크 루소의 말처럼 숲에 안겨 있거나 산길을 걷다보면 교황님이 다녀가시지 않아도 우리들 마음에 평안과 울림이 온다. 나무와 풀들이 내뿜는 숲의 향기와 신선한 공기는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씻어내는 자연의 치유로 인간이 인간다운 영혼을 가지게 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별을 보는 밤이면 숲에 함께 사는 모기에게 피를 헌납하면서도 누군가의 시를 읊으며 행복에 젖는다.

「우리 다시/ 별밭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에 살게 되랴.// 댓돌에 내려서면/ 쏴아 쏟아지는 물소리/ 그대는 향긋한 바람으로 숨쉬고// 창문을 열면/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으로/ 하늘에 닿는 나의 방// 멍석자리에 누워서/ 별밭 하늘을 보는」 이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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