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난로 피울 때 진동하는 석유 냄새가
오히려 사람들을 붙들어 놓고 있다
처음에는 냄새를 밀어내려
문을 열기도 하고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해보지만
석유 냄새는
추위와 추위를 못 견디는 사람 사이에 엉겨 붙어 있다
사람들은 냄새를 밀어내려다
어느새 냄새가 되어 간다
냄새 속에선 냄새를 모른다
싫어도 못 보내는 사람처럼
냄새를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보내려 하기에 못 보내는 것이다
난로가 달았다 식었다 반복하는 동안
우리 몸에 난 요철의 길로
알게 모르게 냄새는 자리 잡는다
나에게 온 너도 그러했다
◇이규리= 1994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2015년 제6회 질마재문학상 수상.
<감상>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소설 향수가 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가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눈을 감을 수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는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냄새가 우리를 얼마나 지배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오래된 석유난로를 피울 때 그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나도 안다. 문을 열고 내 보내려 해 보지만 곧 추워서 성급히 문을 닫고 마는 상황도. 바깥 추위와 대치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 동거를 마치고 나면 온 몸에 배인 석유냄새는 마침내 겨울동안 나의 체취가 되고 만다. 싫어도 못 보내는 사람, 냄새처럼 나에게 스며든 사람, 운명이라고 해야 할 밖에. 삶이란 결국 지난한 현실 속에서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의 연속인가 보다. 한낱 석유냄새를 이렇게 사유할 수 있다니 시인은 대단한 능력자다. -달구벌 시낭송협회 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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