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간이역과 달팽이
[달구벌아침] 간이역과 달팽이
  • 승인 2022.03.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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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모과나무에 간신이 달려 있던 나뭇잎 한 장이 거실 문을 두드린다. 돌아보니 한 계절, 거뜬히 지나온 화단의 화초들이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추위에 떨고 있다. 안쓰러운 마음에 집안으로 들여다 놓다 말고 화들짝 놀란다. 달팽이 한 마리가 나뭇잎 위에 붙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고 있다.
그는 운전을 한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등 뒤에 업고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도로 위에서 보낸다. 기름 값을 줄여서라도 가족의 배부름으로 채워 주고 싶은 마음에 빨리 내달리지도 못한다. 언제나 느릿느릿 인내의 시간을 달릴 뿐이다. 초록 잎사귀의 보금자리를 그리며 화물차 뒤 칸에 자리한 관보다 좁은 공간에서 노숙을 한다. 동장군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한겨울엔 이불 없이 한뎃잠을 견뎌낸다. 그녀의 정성으로 채워 진 따뜻한 밥상은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
"때 맞춰 밥을 하지 않아도, 맘껏 늦잠을 잔다고 간섭할 사람 없으니 좋겠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 듯 일주일에 딱 하루 그와 만나 주말부부로 사는 그녀를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어쩌다 한 번 만나면 없던 정도 새록새록 생기겠다며 수상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담장 너머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지'라며 그저 웃어넘겨 버리지만 쓸쓸함이 고여 눈물이 되는 사연을 아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사람이 떠나고 기차가 잘 서지 않는 간이역은 늘 사람을 그리워한다. 역무원 홀로 역을 지키는 간이역처럼 단 한사람, 그가 찾아와 줄 것임을 알기에 기다림 또한 행복이라 여기며.
집에 들어선 그는 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처럼 거실 한 켠, 자리하고 눕는다. 리모컨 하나 달랑 손에 들 힘밖에 없는 듯, 마지막 남은 힘을 텔레비전 속으로 다 쏟아 내고 만다. 느린 걸음으로 여섯 날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여정에 단 하루만이라도 희망과 여유, 무엇보다 휴식을 선물하고 싶다.
집안에만 있는 그녀는 바깥공기가 그립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의 손을 잡고 산책을 즐기며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보고 싶다.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정안 수처럼 앞에 놓고 이러쿵저러쿵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수다를 풀어놓고 싶다. 그러나 막상 그가 집에 오는 날이면 그의 어깨 위에 바람 한 점의 바람조차 얹힐 수가 없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던 그의 눈과 그녀의 눈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사소한 바램들은 주방 싱크대 앞 설거지 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사랑한데이~이 밥 먹고 힘내서 가족 잘 부탁 해"
사랑 한 스푼, 정성 한 스푼, 힘든 것도 아픈 것도 다 비워 내고, 여유 없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 살푼 넣은 국을 끓인다. 가장으로서의 삶을 지켜 달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한꼬집 넣는다. 어릴 적 '누구 배는 똥배!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배를 쓸어 주던 엄마 손과 같은 마음으로 조물조물 반찬을 지지고 볶는다. 한 주걱 두 주걱 기도하는 마음과 정성으로 밥을 푸고 상을 차린다. 수라상이라도 받은 임금님마냥 해맑게 웃으며 화답하듯 엄지척을 해 보인다.
"역시 당신이 해주는 음식은 뭐든 최고야!"
하루해가 저물면 집을 떠났던 사람들은 휴식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떠났던 사람들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시간에 그는 돌아온 자리로부터 다시 떠난다. 어둠이 짙어지고 가로등 불빛이 한껏 짙어진 어둠을 밀어낼 즈음이면 겨우 텔레비전 속 세상에서 겨우 빠져나온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오늘은 정말 내 색시 바깥바람 쐬어 주려고 선글라스까지 챙겨 왔는데......"
아쉬움과 안쓰러움을 애써 외면 한 체 칠흑 같은 밤거리를 조심스레 걸어 들어간다. 한껏 충전된 휴대폰을 호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으며 그녀로부터 충전된 사랑의 온기가 행여 바람에조차 빼앗길까 봐 그는 또 한 번 흐트러진 옷자락을 동여맨다.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집을 등에 짊어지고 곰작곰작 앞만 보고 기어가던 달팽이! 그 모습이 마치 그의 모습과 흡사하여 그녀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달팽이가 고해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리움에 사무쳐 흘리는 그녀의 기다림과 눈물을 그만은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움가득 차오른 달빛을 품고.
저 멀리 보이는 십자가 붉은 등이 기적처럼 그녀의 품안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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