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라면 값은 누가 정하는가
[박명호 경영칼럼] 라면 값은 누가 정하는가
  • 승인 2023.07.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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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라면 값도 내려야 한다. 소비자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라고 한 경제부총리의 발언에 이어서 국무총리도 “객관적으로 제품 가격이 높은 것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유통구조도 면밀히 살펴라”고 거들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 책임자들은 물가 안정이란 대의를 앞세워서 라면과 제과 업계의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지난 27일 국내 라면 시장점유율 1위 농심이 봉지 당 50원을 내린데 이어, 삼양식품과 오뚜기,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SPC 등이 잇달아 가격 인하에 동참할 예정이다. 밀을 주재료로 쓰는 다른 식품들도 소매가격을 조정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단체협의회는 가격 인하폭이 낮고 특히 인기 제품들은 가격 인하에서 제외되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가격 인하 조치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나 우리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미지수로 남는다.

우리경제가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소비심리’가 최대 관건이다. 다행히 하반기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100.7을 기록해 지난해 5월 이후 13개월 만에 100이상을 기록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치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거리두기 종료로 경기가 조속히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에 반해, 바닥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소비는 수출과 함께 우리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한국무역협회는 하반기에는 무역상황이 서서히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서 기대한대로 소비심리가 살아난다면 우리경제가 하반기에는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 소비는 소비심리 외에도 가계소득, 고용상황 등 여러 경제 변수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는 물가 안정이 실제 소비를 견인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라면 값의 인하를 대놓고 요청하는 이유다.

내수시장의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밀 제품의 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한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 질서를 정부가 앞장서서 바로잡겠다는 발상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압박하고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기업에 대한 자율성 훼손이자 기업경쟁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민간 기업의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정부 주도의 가격 담합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직접 개입은 어쩌면 가격 질서를 흩트리게 될지도 모른다.

시장의 가격은 당연히 기업과 소비자가 결정한다. 정부는 공정한 거래촉진과 가격담합을 밝히기 위한 모니터링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 당국이 아니며 더구나 개별 기업의 활동을 압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도 아니다. 왜곡된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유지·발전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예컨대, 턱없이 비싼 값을 뒤집어씌우는 ‘바가지’ 요금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잘못된 거래 관행은 정부가 나서서 철저히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은 가격을 책정할 때 반드시 고객가치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장사의 신’으로 통하는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 우노 다카시는 “손님이 횡재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살아남는다”라고 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마케팅이다. ‘이 가격에 살거예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 고객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가격이 고객이 평가한 제품의 최대 가치다. 그러므로 기업이 수익보다 고객가치를 먼저 생각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고객가치는 고객이 판단한다. 신라면을 좋아하는 고객도 있고 삼양라면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두 라면의 가치는 단순히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객들은 가격 외에도 기업이 제공하는 여러 혜택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가치의 최종적인 판단은 오로지 고객의 몫이다. 따라서 기업은 고객이 지불하는 금전적·비금전적 비용보다 더 큰 가치를 창조하고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마케팅이다. 그래서 마케팅은 고객가치학이다.

고객가치는 기업의 생명줄이고, 기업경쟁력의 원천은 고객가치를 실현하는 고객사랑이다.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고객사랑의 정신을 배운다. 어린아이의 친구였던 나무가 그 어린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준다는 동화다. ‘이만하면 줄 만큼 다 준 것이겠지’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 나무 이야기다. 그 책의 마지막 줄은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였다. 진정한 마케터는 이 나무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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