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결수 작가 개인전 “노동은 삶의 풍요·가치 상승”...아트리움모리 갤러리 13일까지
김결수 작가 개인전 “노동은 삶의 풍요·가치 상승”...아트리움모리 갤러리 1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8.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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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노동의 효과성 표현
영상·회화·설치 등 매체도 다양
효용 다한 물건에 예술적 행위
과거·현재·미래가 한 공간 속에
볏짚 작품은 인간 노동 순환 은유
회화 속 스크래치는 감정 표현
노동의 흔적은 예술가의 여정
김결수 작
김결수 작

가까운 미래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견은 이미 익숙하다.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노동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견해들을 증명하는 실천들이 하나씩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은 물론이고 병원 진료부터 카페 서빙까지 AI 노동이 현실화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이 AI에 잠식되고 있다고 해서 절망할 것은 없다. AI 시대가 만든 또 다른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될 것임을 역사가 가리키고 있어서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인간에게 노동 없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노동에는 단순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 획득이라는 이유 말고도, 자아실현이라는 중요한 목적이 내포되어 있어서다. 노동은 삶의 풍요와 스스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기여한다. 노동이야말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의미있는 노동을 숭고한 행위로까지 인식하게 된다.

작가 김결수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개념으로 ‘노동’을 언급한다. 그 중에서 노동의 결실이 향하는 지점, 즉 효과에 주목한다. 타인이나 가족의 삶에 기여하는 노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숭고한 노동’으로 명명한 지 어언 30여년이다. 복합문화공간 아트리움모리 갤러리(성주군 월항면 주산로 450)에서 한창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에 ‘노동의 효과성(Labor&Effectiveness)’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영상, 회화, 설치 등의 매체들로 ‘노동의 효과성’을 다양하게 서술했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재봉틀과 철제 궤짝은 ‘노동의 효과성’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노동의 효과성’을 주제로 한 그의 초기 작업이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 서까래, 버려진 목선, 깨진 가마솥, 방앗간 기계, 네온사인 등 누군가의 숭고한 노동에 사용되다 효용가치를 다해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에 자신의 예술적인 행위를 더하는 방식으로 주제화했다.

“가족을 위한 처절한 노동은 숭고하다며 칭송하지만 예술가의 노동은 무익하고 무용하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저항하기 위해 수집한 물건에 저의 예술적인 노동을 추가해 왔습니다.”

수집한 물건에 그의 예술행위가 더해진 작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넘실댄다. 낡고 부서져 흉물스럽던 사물들에서 새로운 생명력이 넘실거린다. 이는 과거 누군가의 노동과 현재 작가의 노동이 협공을 펼친 결과다. 작가는 타인의 노동과 자신의 노동을 연결 지으며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축출하려 시도한다. 그것이 곧 ‘시간성’이다. “작품 속에서 노동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전시장 내에 상영되고 있는 영상 작품과 전시장 입구 실외에 설치한 입방체의 대형 볏짚 작품들은 그의 시간성이 종국에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영상 작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풍경을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을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3D 시뮬레이션과 수학적으로 구현하고, 볏짚 작품에는 두마지기의 논에서 수확하고 버려진 볏짚을 가져와 볍씨를 옮겨 심고 켜켜이 쌓아 올린 후 발아하는 모습을 관찰하도록 했다. 두 작품 모두에 ‘순환’이라는 개념이 투영되어 있다.

“볏짚은 쌀을 생산하는 역할을 다하고 소 먹이가 되고, 그것을 먹은 소는 소화를 시킨 후 배설하게 됩니다. 땅에서 시작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인 것이죠.”

벼의 순환은 인간 노동의 순환에 대한 은유로 기능한다. “인간의 노동 또한 대를 이어가며 행해지고 가치를 축적하게 됩니다. 노동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며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죠.”

볏짚 작품에는 경제 제일주의와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며 농경사회의 순수했던 노동의 의미가 왜곡되는 것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도 묻어있다. “노동의 본래 의미를 발굴하고 복원하고 싶었어요.”

회화성이 부각되는 작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캔버스의 표면을 날카로운 도구로 뜯어 입체감을 확보한 후, 검고 굵은 선으로 최소한의 구조만 살린 집들을 마을 단위로 조성한 작업이다. 비정형의 얼룩과 날카로운 도구로 획득한 스크래치들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감정들에 대한 시각적이자 촉각적인 표현이다. 특히 뜯는 행위로 생겨난 보풀은 마을의 형태와 대조를 이룬다.

특이한 것은 이 연작에선 타인의 노동을 배제하고, 오직 작가의 예술적인 행위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노동의 효과성’이라는 주제로 30여년을 작업한 결과다. 이는 그의 노동이 그 자체로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적 서술이다. 오랜 시간 타인의 노동을 매개로 ‘노동의 효과성’을 어느 정도 단단하게 개념화했다고 자평했고, 그것에 따라 타인의 노동과의 협공 없이 자신만의 예술적인 노동으로 진정성 있는 주제화를 진행하게 됐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사실 두드러진 시각적 효과를 주진 않아요. 무언가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눈을 의식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그저 노동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들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 노동의 흔적이 예술가의 여정이라 믿습니다.”

그는 계명대 서양화과와 동대학 미술교육대학원원, 대구한의대학교 의과학대학 IT를 졸업했으며, 국내와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3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60주년 특별전에 초대돼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전시는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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