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마음사용법
[치유의 인문학] 마음사용법
  • 승인 2023.08.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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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필자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살짝 틀어 보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에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어떤가요? 훨씬 가슴에 깊이 와 닿죠?

첨단 벤처 단지의 산실인 실리콘 밸리 어느 사무실 컴퓨터 스크린 앞에 붙어 있는 '즐기면서 일하자'의 문구는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만든 상징적 슬로건이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을 우리는 '알콜홀릭'이라고 부르고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워크홀릭'이라 부른다. 그런데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합리와 논리를 따지며 사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로고홀릭'이라고 부른다. 가슴보다는 머리로,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따뜻한 감성과 열정으로 살아왔던 우리 사회가 어느새 이성과 차가운 정서로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하버드대 최고의 인기 교수인 탈벤 샤하르 교수도 자신의 행복론 강의에서 빠지지 않고 말했던 가장 첫 번째 주장도 바로 '인간적 감정을 허락하라'였다. 자신의 감성으로 사는 것, 감성의 회복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실화 이야기다. 어느 주인공의 아버지는 한 때 우리나라 6.25 참전 군인이었다. 전쟁을 통해 공도 많이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동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고 또 원하지 않게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성격은 난폭해졌고 점점 파괴적으로 바뀌어 갔고 고립감은 깊어졌다. 이 때문에 주인공 아버지의 우울감은 더욱 깊어갔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우울감을 곁에서 지켜본 주인공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보았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전염이 빠르다. 그래서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상했다. 보이지도 않는 다람쥐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소리치며 무섭다고 화장실도 못가는 사람. 몸의 일부가 굳은 경직성 환자. 천재성이 넘쳐 스스로 병원에 입원한 괴짜 사업가까지 사연은 많았지만 모두가 조현병 환자였다.

자신을 상담해주던 주치의가 상담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마시는 커피에만 신경을 쏟고 상담은 의례적으로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환자들과의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결코 그들이 환자가 아니라 다만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람쥐가 보인다고 미친 사람 취급하는 환자에겐 다람쥐와 한 판 전쟁을 벌이며 놀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몇 개가 보이냐는 괴짜 사업가의 질문에 네 개가 보인다고 말하자 손가락에 집중하지 말고 손가락 너머를 보라는 선문답 같은 말에 머리가 아닌 가슴을 사용하는 법을 깨달았다.

나중에 유명한 의사가 된 그는 병에만 집중하는 의사가 되는 대신 사람들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병의 원인을 먼저 처방하는 마음치료 의사가 된다. 그가 오늘날 웃음치료의 대명사로 유명하게 된 '헌터 아담스'다. 물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패치 아담스>는 머리 위주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현실을 즐기는 법과 함께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었고 필자에겐 구루가 되었다.

얼마 전 동네 마트에 장보러 갔다. 물건을 다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그날따라 줄이 좀 길었다. 필자 바로 앞에는 연로하신 할머니 한분이 계산을 하려고 기다리고 계셨다. 서툴고 느린 동작과 귀도 잘 들리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였다. 점원 분께서

"할머니 6만원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잘 안 들렸는지 계속 "얼마?" "얼마?
를 외칠 뿐이었다. 점원이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대신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하려는데 지갑 속 돈은 3만원뿐이었다. 난감한 점원이 큰 소리로

"할머니 돈 3만원이 부족해요. 3만원 없으세요?"

당연히 주변시선은 할머니에게 모였지만 할머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상황을 급히 파악한 필자가 곧바로 지갑에서 모자란 돈 3만원 꺼내 어르신 몰래 점원에게 쥐어 드렸다. 순간 점원은 의아하다는 듯

"혹시 할머니 아시는분이세요"

"아뇨, 모르지만 그냥 계산해 주세요. 저희 부모님과 같은 연세라서…"

필자의 말에 금방 눈치를 챈 종업원분이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필자가 대신 돈을 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걸 뒤에서 손 사례를 쳐서 조용히 넘어가게 했다. 영화 속 주인공 패치가 나에가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즐김과 행동하는 마음 사용법이었다. 침묵하는 100톤의 지식보다는 실천하는 1그램의 행동하는 정의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세상이 지독하게 시끄럽다. 정치는 한 치의 양보도 없고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들이 연일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시끄러워도 머리가 마음을 이긴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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