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장혁동 작가 개인전…쇼움갤러리 내달 29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장혁동 작가 개인전…쇼움갤러리 내달 29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9.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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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응시’에 포착된 현대인의 불안·무기력
獨 유학 때 낯선 시선과 타협 노력
긴장감이 에너지원·원동력 작용
겉모습은 화려·내면은 힘든 모습
감상자들 공감·위로 이끄는 장치
미완일 때 오히려 상상 여지 확대
정헌메세나상 수상 ‘예술성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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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동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쇼윰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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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동 작 ‘지나가다’
장혁동작-마주하다
장혁동 작 ‘마주하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장혁동 작가의 그림을 “비장한 응시”라고 평했다. 일상 속 풍경을 그리지만 그 시선은 비장하리만치 무겁고 숙연하다는 의미였다. 김종근의 말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한 순간을 포착한 장혁동의 화면에서 어둡고 스산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낮은 채도의 무채색과 윤곽만으로 표현된 인물, 긴장감 있는 면 분할 등이 비장한 화면을 이끈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장치들에 앞서 그림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다.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진지하게 응시한 그의 시선이 장혁동 특유의 사유적인 화면을 이끄는 일등공신이다.

장혁동 개인전이 쇼움갤러리에서 지난 12일부터 시작됐다. 전시 제목은 ‘현대인의 초상(A self-portrait of modern people)’. 경제상황이나 자연재해, 테러 등으로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이 높아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하고 무기력한 심리가 표현돼 있다.

화면 속의 불안한 정서는 현대인이 갖는 지배적인 정서다. 지금은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보편의 정서로 축출해 놓았지만, 출발은 작가자신이었다. 개인적인 불안함을 보편 정서로 승화하기까지,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안동대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면서 그는 디아스포라(DIASPORA-유태인의 유민 생활을 이르는 표현)의 삶을 시작했다. 빌레펠트 대학에서 조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와 올덴브룩에서 거주하며 이방인의 여정이 시작했고, 그런 그를 끊임없이 놓아주지 않았던 것은 이방인 특유의 불안한 정서와 자기존재에 대한 고찰이었다.

“독일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고, 이방인의 그림에 보내는 독인 미술계의 낯선 시선들과 타협하기 위한 고뇌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어요.”

새로운 문화와 예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치열하고 처연한 시간들이 지나갔고, 마침내 그가 느꼈던 심리들이 투영된 장혁동 특유의 화풍이 자리를 잡아갔다. “독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제가 생각한 것은 ‘과연 나는 누구이며, 현대인들의 반복된 일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였어요. 그런 질문 속에서 공허함과 어둠 속 절망이 화면을 채워갔어요.”

변화를 이끈 계기는 어느 순간 마주한 한 그루의 나무였다. 당시 나무 한 그루가 특별하게 다가왔고, 그 감정을 나무를 통해 표출했다. 그러면서 채우려고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채움에서 비움으로의 태세 전환이 시작됐고, 간결하지만 강렬한 특유의 정서로 수렴해 낼 수 있었다.

“초기에는 넓은 풍경을 그리다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그루의 나무를 그렸어요. 그러면서 현대인의 초상으로 넘어왔고, 버리는 일도 시작됐죠.”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두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시점으로 표현한 작품 ‘마주하다’나 계단 끝에선 사람이 좌우 통행으로 분리된 두 종류의 계단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린 작품 ‘거리’에서 불안한 감정이 고조된다. 구도 자체가 불안감을 끌어들이지만, 짙은 색채와 불완전한 선으로 표현한 계단과 그 주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불안감은 증폭된다.

이번 전시엔 동적인 화면도 걸렸는데, 정적인 화면 못지않게 감정적 격정이 묻어난다. 벽을 분할하고 경계지점과 바닥을 짙게 표현한 배경에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두 손으로 눈을 감싸거나, 세 명의 남녀가 계단 아래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에서 상황이나 행위적인 긴장감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 자체에서 고조된 긴장감이 한껏 묻어난다. 전자는 작품 ‘바라보다’, 후자는 ‘어디로부터’다. 모두 누구인지 모를 불특정의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들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긴장감 숨겨진 욕망과 불안한 일상, 이방인으로서의 괴리감,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군중 속의 외로움 등의 감정들은 결국 어디로 귀결이 되어 질 과정인지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작업의 표현방법으로는 구상회화의 전통에 기반 하면서 추상회화의 정신성을 가미한 회화다.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과 심리적 온도 차이를 조율하며 사색적인 공간으로 치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유적인 화면을 추구하진 않았다. 유학을 떠나기 전만해도 구상적인 풍경에 집중했다. 쉼 없이 열심히 풍경을 그린 탓에 풍경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독일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독일 대학 입학 전 미술대학 교수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는데, 돌아온 대답은 “진부하다”는 참으로 냉혹한 평가였다.

작가로서 혹평을 듣고 변화하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을까? 그 역시 혼란에 빠졌었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찾는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일상 속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갔다. 새롭게 변화된 화면에서 어두운 분위기 외에도 미완의 완성이라는 특징도 발견된다. 그리다 만 흔적, 인물에서 얼굴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은 것, 완성한 신체를 뭉개고 다리만 남긴 상황 등에서 미완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적당한 시점에서 손을 뗀 것”이라고 했다. “그림에서 언제 붓을 놓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더 그릴 수 없을 때까지 그리는 게 완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미완일 때 상상의 여지가 넓혀지는 것 같아요. 미완이 미완이 아닌 거죠.” 물론 필요할 경우 꼼꼼한 완성도로 완결되기도 한다.

얼굴에서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은 것 또한 해석의 여지를 넓히기 위한 장치다. “윤곽만 그릴 경우, 익명의 사람들이 봤을 때 자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죠.” 작업 초기에는 이목구비를 명확하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점점 간결한 표현을 하면서 지금은 윤곽만 남기게 됐다.

그가 응시한 현대인의 겉모습은 화려하다. 하지만 내면은 지치고 힘든 모습들이다. “누구라도 들여다보면 어려움 한 두 가지 정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들의 초상이죠.” 그의 말에서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승화한 그의 기지가 읽힌다. 이 보편의 정서가 감상자를 공감과 위로로 이끄는 장치가 된다.

기꺼이 떠난 독일 유학, 유학을 끝내고 독일에서 자리를 잡은 그. 그가 독일을 떠나면서 버리고 간 것은 익숙한 평화이고, 취한 것은 낯선 긴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긴장감은 그에게 예술적인 창조를 위한 에너지원이 됐고, 사색적이고 사유적인 화면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애써 찾고, 고함쳐서 부르짖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내면에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었다.

“예술가는 절대 자신을 숨길 수 없고,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게 되어 있죠. 저 역시 그런 상황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의 선들에서 발견되는 갈필(수묵화에서 물기가 거의 없는 붓에 먹을 조금만 묻혀 사용하는 방법)적 표현들은 작정하고 시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이끈 표현들이다. “한글을 쓰던 습관으로 굳어진 습이 갈필의 형식으로 나타났죠.”

희망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다. 화면은 어둡지만 때로는 강하게, 어떤 때는 미세하게 빛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희망의 빛”이라고 했다. 작품 ‘기억’에서 행복감마저 자아낸다. 아이들이 회전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치열했던 내면이 잠잠해지고, 그로 인해 찾아온 밝음으로 한 걸음 내딛은 변화다.

그림 속 한 줄기 빛은 “고통의 순간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찾은 환희였다. 결국 그는 낮은 채도와 단순화한 풍경, 그리고 무광택으로 표현한 풍경, 그리고 때때로 끌어들인 한줄기 빛의 흐름에서 고뇌와 희망의 서사를 단단하게 직조하고 있다.

그의 창작활동은 2003년에 정헌메세나(Association Jung-Jun Mecenat)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한 정헌메세나상은 프랑스 및 유럽에서 미술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후원을 통해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DI동일주식회사 고 정헌 서정익선생의 부인 이영숙 여사의 사재를 출연 받아 만든 상이다.

그는 쇼움갤러리 전시에 기대감을 표했다. “쇼움갤러리를 통해 국내 활동을 재개하게 되어 기쁘다”고.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한 만큼 많은 관람객들이 보고 위안을 받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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