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눈먼 자들의 사회”
<대구논단>“눈먼 자들의 사회”
  • 승인 2012.02.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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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연초부터 사람들은 `용의 해’를 자처하면서, 어쩌면 경험하지도 못 할 낙관의 희망을 가지고 용이 되기를 꿈꾸면서 새해를 시작하였지만, 이 사회의 분위기는 여전히 메마른 사막을 연상케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에서 불거져 나오는 돈 문제도 그렇고, 최근 이슈가 되는 학교폭력의 문제도 이런 황량한 분위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

2012년에도 청년 실업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것 같지만은 않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사회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억압에 대한 `치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해가 바뀌면서 과거의 문제들을 없는 일처럼 아픈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 하고 있다. 낙관적인 2012년을 보기 힘든 이유이다.

`공감을 상실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위로와 연민은 곧 시간이 봉합해 버리는 `기억상실’로 이어지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개인 이기주의는 이 시대의 문제가 모두 `우리가 가해자’ 라는 인식을 망각케 한다. 작년 스산했던 어느 가을날 세상을 등진 어느 노동자의 사연도 이제 우리에게 잊혀진 이야기가 돼 버렸다.

살아서 싸워야 한다는 간단한 명제 앞에서 학생, 노동자, 농민들은 이제 아픔과 억압이 없는 세상으로 떠나가고 있다. 오로지 죽음으로써만 자신들이 처한 `도가니’의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고자 했던 이들의 희생이 정작 가해자인 사회와 우리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 14일은 자신의 집 앞 골목에서 이름 모를 이들에게 납치되어 물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박종철 군이 마지막 세상에 머물렀던 25년이 되는 날이다. 그를 기억하던 어떤 이는 그를 “그냥 외모로 봐서는 차분한 문학청년 같은 모습이었는데 모든 일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런 삶의 자세를 가졌었고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시점에 군부독재가 난리를 치고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박종철 열사는 우리 사회에서 약한 자, 가지지 못한 자 이런 사람들과 공감이 매우 강했고 자기 고민처럼 아파하고 슬퍼하고 이런 것들이 아주 강한 청년이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사회는 이런 희생자들에게 냉정하다. 살아있는 이들의 가족들이 가지는 그 깊은 슬픔에 대해 국가는 공감과 반성 보다는 잔인한 사회현실을 들어 이들에게 슬픔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개인을 버리고 없는 자, 소외된 자 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던 이들의 짧은 삶은 2012년 사회 분위기 앞에서 비루해 보이기까지 한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상실해 버린 이 시대의 풍경은 마치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어느 도시 전체가 알 수 없는 전염병에 시달리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는 희귀한 병에 시달리게 되고, 정부는 의사, 아이, 창녀, 노동자등 병에 걸린 이들을 병원에 격리수용한다. 다만 의사의 아내인 한 여성이 눈이 멀쩡하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먼 자들처럼 행동을 해 병원에 같이 수용된다. 이 순간부터 이 아내는 눈먼 자들의 생존을 위한 끔찍한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진정한 `소유’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소설에 의하면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판단하는 순간 이것에 대한 서로의 공감은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존을 위해 소유하였을 때 보다 더 잔혹한 개인의 이기를 만들어 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 하여 여 주인공은 `이 순간 가장 두려운 것은 나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토로한다.

어쩌면 우리는 최근 벌어지는 이 사회 안의 부정적 풍경들을 모두가 눈먼 자들처럼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나만 눈을 떠 보는 것처럼 하는 식의 기형적 시선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혹은 사회가 공동체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기형적 시선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의 기형적 틀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눈이 멀었지만 본다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라는 여 주인공의 소설 말미의 발언이 의미심장해지는 2012년 새해를 간신히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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