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명예보다 소중한 것은
국정원의 명예보다 소중한 것은
  • 승인 2013.07.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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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쌍규 (주)Dream Care 지식충전소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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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정보원은 ‘2급 비밀’로 돼 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 문서’로 재분류한 뒤 이를 국회 정보위에 전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 와중에서 군사작전 하듯이 회의록 전격 공개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정보기관이 ‘양지’로 나와 ‘안보 정치’ 논리로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였다. 이런 전격 행동은 흉기를 들고 설치는 위험한 망나니와 같았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선 국가 기밀도, 국익도 뒷전으로 미룰 수 있다는 남재준 국가원장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나도 정치 중립을 지킬 테니 정치권도 지켜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록 공개로 이 같은 다짐은 ‘헛말’에 그쳤다. 오히려 남 원장이 먼저 ‘정치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신의와 비밀의 원칙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정상회담 내용을 ‘독자 결정’으로 공개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국기문란 행위다. 회의록을 공개한 시점은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불이 옮겨 붙는 상황이었다. 남원장은 남북정상 회의록 공개로 국정원의 명예를 지켰는지는 몰라도, 회의록 공개가 어떤 정치·사회적 파장을 불러올지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그 파장의 비판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론분열을 통합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남남 갈등과 국론 분열을 더 심각하게 만들어 나라 전체를 온통 정쟁의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논란이 한창인 시점에 회의록 공개를 결정하여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는 비상식적인 정치활동을 진행하였다. 한마디로 국정원이 스스로 정치개입을 자인하는 ‘자충수’를 두게 되었다.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범법행위를 가리려 국익도, 국격도, 최소한의 상식도 모두 저버렸다. 청와대의 승인 내지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노골적이고 불손한 태도다. 국정원 결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둘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문제의 재점화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 차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새누리당이 최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국정조사를 기를 쓰고 반대한 것도, 국정원이 회의록 공개를 강행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 보호’에 그 근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계 등에 비춰 봐도 청와대는 무관함을 주장하기 힘들다. 국정원이 대선 기간 댓글 공작을 벌인 목적이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이미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데서도 확인됐다.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는지, 당락에 영향을 끼칠 정도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며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마침표를 찍을 방안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투명인간처럼 정치권에 책임을 밀어버리는 소극적인 태도는 비겁하다.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대선 당시 발언을 사과하고,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구체적인 실천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국정원은 남북정상 회의록 공개가 민주주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고민도,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법 해석과 유불리를 떠나 중요 국정기록을 남기려는 법 취지도, 여야 합의라는 정치대화 과정도 보이지 않았다. 세간에선 ‘국정원 쿠데타’란 비유도 나왔다. 외교적 수사와 정치투쟁은 별개의 문제이다. 외교적 수사를 정치투쟁의 근거로 삼는 것은 국가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국정원의 정보공개 오판으로 정치는 실종되고 왜곡 정치선동만 판을 치고 있다. 그 파장의 효과가 과연 박근혜 정부에 어떤 정치적 이득을 줄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은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국정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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