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주는 무거움, 완벽한 연주·연출로 덜다
비극이 주는 무거움, 완벽한 연주·연출로 덜다
  • 황인옥
  • 승인 2013.10.05 18: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운명의 힘’
/news/photo/first/201310/img_110072_1.jpg"오페라운명의힘공연모습/news/photo/first/201310/img_110072_1.jpg"
제11회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화려한 서막을 열었던 지난 5일, 베르디의 대작 중의 대작을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대구 오페라에 자부심과 기대감을 표하며 개막작인 ‘운명의 힘’을 보기 위해 대구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오페라 ‘운명의 힘’은 스페인 후작의 딸인 레오노라와 그녀의 애인 아르바로, 오빠 카를로 간에 얽힌 비극적 운명을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그려낸 작품이다. ‘베르디 사상 가장 완벽한 서곡’을 비롯해 성숙한 관현악과 가슴 아픈 아리아, 위력적인 합창 등의 완성도 높은 음악이 돋보이는 베르디 중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베르디 최상의 작품과 스파라노 임세경·이화영, 테너 이정원·하석배, 바리톤 석상근 등 국내 최고 성악가들의 조합으로 처음부터 어느 정도 성과는 예견됐지만, “‘신과 인간’이라는 선 굵은 주제와 ‘신’ 중심이었던 근대 이전 서양의 시대상을 어떻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끌어내느냐”에 관람 포인트를 두고 극에 집중해 들어갔다.

극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잉태한 비극의 신에 의한 구원’이라는 선 굵은 주제와 베르디 사상 최대의 비극이 주는 무거움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접점을 찾은 듯, 2시간 40분이라는 관람시간을 타이트하면서도 담담한 호흡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

최고의 성악가들이 토해 내는 열정의 무대와 함께 또 하나 시선을 사로잡은 요소는 미술관이 연상될 만큼 면과 선으로만 구성한 간결한 무대세트와 은은한 조명, 흰색과 미색 등의 단조로운 색채의 의상들이었다.

흔히 오페라 무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의상과 생활 도구들은 모노톤으로 이미지화된 비구상적 형상으로 대체되며, 연출가의 암시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관객이 한 발짝 물러나 어리석은 존재인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는 정선영 연출자의 의도는 구체적인 사물과 화려함이라는 익숙한 관점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나 조금은 낯설게 해석되며 암시적인 이미지의 느낌으로 표현됐다. 무거운 주제와 음악이 분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장치들이 무대세트와 의상이었던 것.

이와 함께 극의 완성도를 배가 시킨 또 다른 포인트는 2011년 축제의 개막작인 ‘아이다’를 통해 뛰어난 음악성을 입증했던 실바노 코르시의 지휘. 하나의 음도 마에스트로의 의도에서 이탈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듯, 그의 깐깐함이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토해 냈다.

한마디로 이번 무대에서 보여준 ‘운명의 힘’은 음악과 연주, 출연자, 무대, 의상, 조명 등이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러면서도 결코 과하지 않은 성숙미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그로 인한 외로움, 진정한 염원을 통한 신의 구원 등을 극도의 절제미로 표현한 서양 오페라의 진수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개막 공연에서 한 그루의 소나무와 세 그루의 잣나무, 몇개의 선으로만 유배지 선비의 쓸쓸함을 서걱하게 표현한 조선 문인화의 정수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떠올렸다면 아이러니(irony) 일까.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서양 철학의 진수를 절제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동양의 화폭 속으로 끌어들인 정선영 연출자의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