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어렵지만 ‘청라언덕’은 우리 이야기
오페라 어렵지만 ‘청라언덕’은 우리 이야기
  • 황인옥
  • 승인 2013.10.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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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 따뜻한 위로 주는 음악 하고파

제11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메인작품 ‘청라언덕’ 작곡가 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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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김성재씨
피와 살이 튀는 치열한 예술도 있고. 은은한 감성으로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그윽한 예술도 있다. 작곡가 김성재씨(45)는 물기 어린 시선과 순수한 감성으로 메마른 영혼에 윤기를 더하는 예술인이다.

그가 작곡한 지난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인 창작오페라 ‘청라언덕’의 아름다운 곡들은 감각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의 가슴을 ‘순수’로 다시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감성’의 ‘청라언덕’은 지난해 무대에 이어 올해의 오페라축제 메인 프로그램으로 성황리에 공연될 만큼 대구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성재. 그는 무명으로 ‘오페라 도시 대구’의 랜드마크인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혜성처럼 등장해 묵직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흔히 무명이 그렇듯 그 역시 아직은 세상과의 소통에 낯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문득 이 남자를 제대로 탐구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차올라 ‘청라언덕’ 공연 시기에 즈음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수많은 주인공들 틈에서 유독 그가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순수’에 있다. 화려함과 묵직함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지만, 화려하고 난해한 현대 예술의 틈바구니에서 ‘순수’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희소성의 가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보다 훌륭하신 분들도 많은데…”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를 설득해 만남을 가졌다. 먼저 “축제의 메인작 작곡자로 공모하기 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대한 정보가 있었느냐’”는 질문부터 던지자, 그는 “솔직히 잘 몰랐다”고 했다. 심지어 마산에 사는 그가 마산·창원의 문화 중심인 창원성산아트홀에 대해서도 별 정보가 없어 보였다.

이런 순박하고 조용한 남자가 어떻게 그 치열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히어로가 될 수 있었을까. 그의 답에서 유추하면 김성재는 세상사에 촉을 곤두세우며 세상의 흐름을 탐닉하는 그런 부류는 아닌 듯 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것도 다분히 희생이 강요되는 일들에 자신을 던지며 하심(下心)의 세월을 지나온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 시간들은 결과적으로 그를 담금질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고, 그 속에 투영된 그의 노력들은 오페라 작품을 작곡할 만큼의 좋은 기반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의(善意)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화답이라고 할까. 기자의 생각은 그랬다.

대구오페라축제를 잘 모르는 이 남자가 축제의 개막작 작곡자 공모에 응모하게 된 과정도 파안대소(破顔大笑)할 만큼 순박했다. “아내가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고 해보라고 해서”였다. 그렇게 응모를 결심하고 대본을 보는 순간 “5분 만에 곡 하나를 완성했다”고 한다. “대본이 너무 좋아 바로 몰입한 탓”이라고 했다.

축제 측에 제출해야 할 5곡 중 한곡만 그렇게 찰나적으로 완성하고 “아내의 권유로 시작은 했지만 훌륭한 작곡가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더이상의 진척없이 손을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또 다시 부인의 독촉에 손을 댄 것이 마감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분량의 곡을 부랴부랴 완성하고 최종 마감 당일에 오케스트레이션 CD를 제작해 대구로 출발했다. 설상가상 대구에 들어와서도 공모서류를 제출해야 할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위치를 몰라 월드컵경기장을 헤매고 헤맸다. 결국 최종 마감 가드라인 5분을 남겨놓고 턱걸이 마감을 했다.

“자료를 제출하고도 전혀 기대 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강의하러 가는 도중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처음 며칠은 꿈결처럼 느껴지고 믿어지지 않은 채 붕 떠 있다가, 오페라의 전곡을 작곡해야 한다는 생각에 흥분과 부담이 교차했다.”

그는 창원대학교 음악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현재 경북대학교 작곡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면서 경북대학교와 창원대학교 음악과, 교육대학원에 출강 중인 전문 음악인이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를 작곡한 경험이 전무한 마산출신의 무명이다. 그런 그가 대구 출신의 근대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일대기를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을 모티브로 제작한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창작오페라 작곡자로 선정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그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김성재의 역량과 그의 역량을 공정하게 심사한 주최 측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공모를 주최한 오페라하우스 측에서 나이, 성별, 학력, 경력 등의 응모자격과 서울, 경기, 경남, 대구 등 지역의 제한을 두지 않는 방식의 공모를 진행했고, 심사 과정에 지원자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음악으로만 평가한 점 등의 열린 공모가 있었다. 심사과정에서 끼어들 수 있는 학연과 지연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그런 열린 공모 속에서 그의 곡들은 “선율 진행과 화성 구조가 매끄럽고 멜로디가 유려하며 대중 친화적이어서 유명한 곡들이 많은 박태준 작곡가의 작품들을 오페라로 훌륭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을 끌어내며 8명의 참가자를 따돌리고 선두를 꿰찰 수 있었다. 당선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무명이라 걸림 없이 작곡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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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청라언덕’ 공연모습.
-‘청라언덕’은 음악이 익숙하게 들어왔던 가곡처럼 편안하고 유려했다. 이런 곡으로 컨셉을 잡은 이유는.

“박태준 선생님의 가곡 ‘동무생각’이나 현제명 선생님의 곡처럼 근대 우리 가곡을 중심으로 곡을 풀어내려 했다. 대본을 받아보니 무조이거나 현대음악 기법으로 써야 될 내용이 없었다. ‘청라언덕’은 조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주를 이룬다. 관객들이 편안하고 익숙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 작곡에 가장 중점은 둔 부분이 있다면.

“박태준의 동무생각에 초점을 두고 박태준 선생님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박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선생님의 첫사랑과 동무생각을 연결지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는 것이었다. 봄은 풋풋하게, 여름은 열정적으로, 가을은 쓸쓸함으로, 겨울은 스산함으로 표현하려 했다.”

- 지향점은 무엇이었나.

“‘대중 친화적인 작품’이 내가 작곡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그래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중간형식을 표방해서 곡을 쓰기로 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고 힐링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오페라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나는 ‘청라언덕’이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없이 대중친화적으로 쓸 수 있었다. 결국 그것이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간 것 같다.”

- 오페라 작곡 쉽지 않은 작업이다. 더군다나 첫작품으로. 가능하게 한 밑거름은 무엇이었나.

“통영에 있는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3년 동안 했다. 마산에서 통영까지 76km인데 3년 동안 주일마다 가는 것 쉽지 않았지만, 사명감으로 한주도 걸러지 않고 갔다. 문제는 그곳 수준에 맞는 성가곡이 필요한데 기존의 곡들은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한곡씩 성가곡을 작곡하고 예쁘게 요리조리 편곡도 했다. 3년 동안 그렇게 작곡을 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보통 부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도움됐던 것은 대학 때부터 1년에 한두 편씩 내 스스로 곡을 남기고 싶어 꾸준하게 가곡을 써 왔던 것이다. 최근에는 박사과정의 스승이신 진영민 은사님께서 오페라 악보를 분석하는 과제를 주셨는데 그때는 ‘왜 이런 것을 시키시나’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오페라를 쓸 수 있는 기초과정들이었던 것 같다.”

-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오페라 작곡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박태준 선생님의 ‘동무생각’은 내가 처음으로 풍금으로 연주한 곡이고, 나와는 친숙한 곡이다. 또 교회 음악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동무생각은 가곡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음악과 비슷한 곡이라 용기를 냈다. 특히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발음에서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는 워드 페인팅 기법에 신경을 썼다. 슈베르트도 그런 기법을 많이 했는데, 어려웠지만 나 또한 그런 식의 접근을 하려고 노력했다.”

- 부담이 컸을텐데, 공연 후의 평가는 어땠나.

“비제는 ‘카르멘’을 쓰고 언론과 대중의 반응에 스트레스가 심해 죽었다. 이처럼 공연되기 전까지 작곡가의 부담은 엄청나게 크다. 나 역시 무서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는데 공연을 보신 분들이 다들 좋다고 해 주셔서 너무나 행복했다. 혹평만 아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좋게 봐 주셔서 큰 힘이 됐다.”

-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들어와 보니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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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정말 긴박하게 돌아간다. 일주일에 한 작품씩 공연하는 것을 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저력이 느껴진다. 축제의 기획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있고, 나 같은 무명도 기꺼이 인정하고 기회를 주는 것도 대단해 보인다. 이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2회에 걸쳐 참여하며 가지게 됐다.”

김성재 작곡가의 음악인생을 들을수록 박태준 선생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형’의 이야기와 ‘마산’이라는 지역에 있다. 박태준 선생은 첫사랑 유인경과 삶과 죽음으로 이별을 하고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는 마산의 노비산과 시가지 아래로 푸르게 펼쳐진 마산 앞바다를 두 작곡가가 시대를 달리하며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지역적 감성이 두 작곡가의 영혼을 타고 소통하고 있었다.

박태준과 김성재의 또 하나의 소통 코드는 ‘형’이다. 그들의 형들은 두 작곡가의 음악적 스승이었다. 박태준 선생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이 그의 형인 박태원의 영향 때문이라면, 김성재 역시 그의 형이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 박태원은 스와니강과 클래멘타인 등의 외국 곡을 번안한 장본인이다. 김성재의 형도 오르간을 잘 치고 음악을 가까이 한 전문가 못지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고, 김성재에게 처음 오르간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올해 축제에 보강된 청라언덕에 박태원 선생의 아리아가 나오는데 저의 형이 생각나서 그 부분의 곡을 쉽게 쓸 수 있었다. 형은 오르간을 정말 잘 쳤다. 당시 교회 찬송가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잘 없었는데 형이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형도 박태원 선생처럼 노래, 운동, 문학 등 못하는 것이 없는 천재였다. 음악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레슨비 때문에 교대를 나와 선생이 됐다. 형이 내게 처음 오르간으로 쳐 보라고 한 곡이 박태준의 ‘동무생각’이다.”

- 형 말고 또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당연히 아내다. 오페라 공모가 있다는 것도 아내 덕에 알았고, 작곡할 동안 예민해져서 민감하게 했는데도 다 받아주고 내조를 잘 해 줬다. 특히 대중적인 곡을 쓰게 만든 당사자가 아내다. 피아노를 치는 아내는 내가 현대음악을 편향적으로 듣는 것을 늘 지적해 주었다. 장르를 떠나 다양한 음악을 두루두루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그런 다양한 곡들을 들으면서 내 음악도 조금씩 편하고 쉬워졌다. 내게 아내는 음악적으로도 좋은 동반자가 돼 주고 있는 셈이다.”

- 첫 작품이 ‘청라언덕’이었다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정말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편안한 오페라 부파를 쓰고 싶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기회가 되면 밝고 재미있는 오페라 곡을 꼭 써보고 싶다.”

- 어떤 작곡가가 되고 싶나.

“곡을 쓸 때 감동, 위로, 따뜻함 이런 것을 먼저 떠올린다. 청라언덕을 쓸 때도 그런 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다. 현대인들이 무한경쟁과 빈부격차, 경기침체 등으로 힘들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고 싶다. 따뜻한 음악을 통해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 그런 곡을 쓰려면 기법적인 것보다 순수하고 깊은 영성이 더 요구된다. 깊은 영성이 담긴 곡들은 듣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깊은 영성을 가질 수 있도록 늘 기도한다.”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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