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관심이 큰 친절로
작은 관심이 큰 친절로
  • 승인 2013.11.0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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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대구환경청 환경관리팀장 자유기고가
저 높은 가을하늘만큼 쾌청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며칠 전 일이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자주 이용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친절에 대한 이야기다.

녀석은 슈퍼마켓의 자체 상표가 붙은 탄산음료를 좋아해,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점포를 자주 들르는 편이다.

녀석에게 특이한 점은 음료와 면류, 햄이나 과자류 등 품목별로 싸고 비싼 것을 가려가며, 여러 가게를 두루 이용함으로써 많은 단골을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 때, 재미 삼아 아파트 인근에 있는 몇몇 가게의 품목별 가격을 비교해보라는 권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생활습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날도 역시 탄산음료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녀석의 얼굴을 기억한 직원이 작은 봉투를 건네주더라는 것. 확인을 해보니, 또박또박 쓴 글씨로 ‘○○ 상표의 콜라를 사러 오는 고등학생에게 전해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꼭’이라는 화살표까지 표시를 함으로써 찾아줘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새끼손가락보다 짧고 얄팍한 교통카드였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몇 마디 전화로 감동을 받은 사례가 있으니,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을 위해 직장 근처의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열심히 운동을 하던 참이었다. 바쁜 일로 며칠 나가지 못하고 있던 중, 나흘째 되는 날 전화가 걸려왔다. ‘요 며칠 회원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냐’는 내용이었다. 조금 바빴노라고 일상적인 대답을 했는데, 연이어 돌아온 질문은 ‘혹시 기간연장이 필요한 일은 아닌지’ 사정을 묻는 것이 아닌가. 예상외의 고마움에, 오늘은 꼭 시간을 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러 군데 헬스장을 다녀본 적이 있었지만, 불과 사흘 정도 못 나간 일로 걱정 어린 전화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어서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고 할까. 사진을 붙여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름을 알았는지. 전화를 끊고 난 뒤의 기분은, ‘친절’이라는 이름의 마차를 탄 것처럼 설레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운동을 거르지 말아야겠다는 가벼운 다짐까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위의 두 가지 예를 보면,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다. 고객이 흘리고 간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되찾아준 마음씀씀이나, 며칠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고,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 기간연장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는 정신. 그 친절한 서비스의 밑바탕에 관심이 자리하지 않았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녀석에게는, 막 충전이 끝난 교통카드를 잃어버리고 며칠 동안 현금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는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해프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고 싶을 만큼 부푼 심정이었다.

고객이 자주 찾는 시간과 자신의 교대시간을 고려해 옆의 직원에게 맡겨두기까지, 소리 없는 친절이 얼마나 큰 감동의 파도를 불러왔는지. 큰 금액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없으면 매우 불편한 것이 바로 교통카드다. 더구나 따로 비상금을 챙기지 못한 학생에게는 더욱 난감한 일이다. 고객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아니었던들,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거나 충분히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을….

같은 일이라도, 관심을 갖고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헤어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꾸거나 새 옷을 입었을 때, 특별한 일로 만족감에 사로잡혀있을 때, 누군가 달라진 모습을 알고 표현해주는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또한 무심코 이야기했던 자신의 취향이나 가족관계 등에 대해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 진심으로 우러난 친절이야말로, 능히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엔도르핀 샘솟는 바이러스가 아닐까 한다. 단풍이 붉게 물든 이 가을, 작은 관심이 가져다 준 큰 친절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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