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을 찾아서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을 찾아서
  • 승인 2013.11.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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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월 시인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을 찾았다. 올해엔 국화꽃이 만발한 때를 맞추어 마침 미당문학제가 개최된다는 초청장을 받고 갔었다.

해마다 개최되는 미당문학제이지만 나는 미당이 세상을 뜬 12월 24일 하루 전날인 12월 23일엔 빠짐없이 참가했다. 해마다 선운리 질마재 산언덕 미당 묘소에서 낮 12시에 지내는 미당 묘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했던 것이다. 어느 해는 제수를 차릴 사람이 없어 대구에서 내가 칠성시장에 가서 장을 보아 승용차에 싣고 전북 고창 선운리까지 가서 묘제를 지낸 적도 있었다.

과거엔 동국대학교와 중앙일보사 그리고 시와 시학사에서도 참여해 풍성했으나 11월 초순 미당문학제가 해마다 개최되기에 그쪽으로 쏠리다 보니 남은 사람은 미당 친아우 서정태 옹과 동국대 윤재웅 교수 전옥란 작가 그리고 나 뿐인 때도 있었다.

미당 친아우이신 서정태 옹은 올해로 91세로 정정하시긴 하나 몸이 불편해 겨우 마당까지 발을 내딛는 형편이라 해마다 미당 묘제를 주관해 왔으나 어느 해부터 자신도 거동이 불편해 내가 맡은 적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슬픈 현상은 한국 제일의 시인인 미당 묘제를 마련할 마땅한 데가 없는 것이다. 미당의 두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간 지 오래이고 피붙이라곤 친아우인 서정태 옹이 장수하고 계시기에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다.

미당 기념사업회가 있으나 서울에 본부를 두고 따로 행사를 치르고 있고 미당 시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고창 군청이 주 행사인 미당 문학제에 관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정태 옹은 남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며 자신이 세상을 떠도 미당 묘제는 영구히 이어갈 묘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귀뜸해 주시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친일시를 몇 편 썼다 해서 미당을 확대 해석해서 완전 깎아내린 문학단체의 일원이기도 했던 포항의 이종암 시인이 추운 겨울에 눈도 내려 듬성듬성 깔린 미당 묘소에 혼자 찾아와 미당이 생전 좋아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맥주를 따루어 놓고 고인을 기렸다고 한다. 이유인 즉 시 작품으로 한국사에 공헌한 그 업적은 유현하기에 같은 시를 쓰는 후학으로서 예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내 동료 낭만시 동인인 홍승우 시인은 미당 묘소를 가기 위해 대구에서 출발하기 전 새벽에 목욕을 정갈히 하고 옷도 새로 깨끗하게 갈고 입고 왔다고 했는데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요즘같이 웃어른을 경시하는 세상에 두 시인의 이런 모습은 이 시대의 거울에 다름 아니라 생각한다.

2000년 12월 28일 미당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질마재 산언덕에는 마지막 가시는 미당을 보려고 전국에서 구름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자식 다름 없는 문단이 다 아는 미당의 수제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당이 세상 뜬 이듬해 어느 문예지에 날조된 문법으로 스승 미당을 무참하게도 힐난하는 글을 발표했던 것이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도 ‘한솥밥을 먹었는데 그러면 안되지’라고 후문했던 기억이 난다.

미당 장례식이 있었던 그날, 마지막 이승에서 흙으로 돌아가시는데 제각기 삽으로 흙을 한 삽씩 떠서 뿌리는 의식이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김용택 안도현 시인도 삽으로 흙을 한 삽씩 떠서 뿌리며 고인에게 예를 표하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나하곤 동시대 시인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지만 미당이 친일시를 몇 편 썼다 해서 확대해석해서 완전 깎아내린 문학단체의 일원들이 아닌가. 나는 감탄했다. 바로 이것이라는 것! 노선은 달라도 같은 시를 쓰는 시인정신이란 이래야 된다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당이 전북 출신 시인이었으며 그들 역시 전북에서 활동하는 시인들 아닌가.

이번 미당문학제에는 동국대학교 주관 콘서트에 신경림 시인이 참가해 한국 현대시사 최고의 시로 평가받고 있는 미당의 시 ‘동천’을 암송까지 해 들려주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는데 젊은 평론가들과 시인들이 미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누구나 잘못을 할 수는 있는데 잘못 된 부분 보다 더 큰 영역의 업적을 남겼을 때는 인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는가 하면 북한의 뛰어난 문인들 경우도 숙청하지 않고 자질을 인정해 받아들인 설득력 있는 예를 들어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지금 우리시대는 너무나 사고가 경질되어 있다.

미당같이 모국어를 가장 잘 살려 오천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 위에 올려놓은 위대한 업적은 누구도 본받을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세계적인 보배다. 화합해 보일 일이며 시대상황을 읽어내는 혜안을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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