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쌍창·외부마루 건축사적 가치 커
문화재청은 건축 부재의 하나인 공포의 형태라든가 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는 창인 영쌍창(靈雙窓), 외부 마루 흔적 등에서 중건기 건축 특징과 변화 양상을 볼 수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대웅전 정면과 양 측면 기둥 아래에는 마루가 설치되었던 흔적을 보이는 큰 구멍이 있다.
이처럼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구조라든가 영쌍창은 18세기 이전 건물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고식(古式)으로 평가된다.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국사인 지공(指空)이 원나라와 고려를 다니면서 불법을 펼친 일을 기념하고자 세운 절이라 해서 처음 이름은 대국사로 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가 선조 38년(1605) 탄우(坦祐)가 중창(重創)하면서 명칭을 대곡사로 바꾸었다. 하지만 1960년 대곡사 앞 텃밭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고려 초기 다층석탑이 발견되고, 나아가 고려 중기 때 문인인 이규보가 남긴 시에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등이 있는 점으로 미뤄 창건 시기는 신라말~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봉정암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천244m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탑이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백담사사적기(百潭寺寺蹟記·1923)에 수록된 봉정암중수기(鳳頂庵重修記·1781)에 따르면 이 탑은 신라시대 고승인 자장율사(590~658년)가 당에서 모셔 온 석가모니 사리 7과를 봉안했다고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