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재정에 복지부담 ‘눈덩이’…지방자치 표류
쪼그라든 재정에 복지부담 ‘눈덩이’…지방자치 표류
  • 이정희
  • 승인 2015.01.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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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지방재정, 원인과 대책
국세-지방세 비율 수십년째 8대2
지방세 비중 확대 무엇보다 시급
매년 정부예산안 확정 시기와 국회 새해 예산안 심사가 진행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전국 시·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예산 담당 공무원들이 서울로 올라와 국회와 중앙정부 부처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다. 짧게는 당일치기, 길게는 한 주 내내 서울에 상주하며 이들은 국비 확보를 위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들과 관련 상임위원, 부처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예산 담당 공무원이 지역 예결위원 의원실에서 ‘투숙’하며 예산확보 현황을 실시간 점검하는 모습도 공공연하게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지역 현안에 몰두해야 할 지자체 관계자들이 서울에 매달려 있는 게 모순인 것 같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가뜩이나 지방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서라도 내년도 예산에서 지역 몫으로 돌아올 국비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 장들에겐 ‘올해 국비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시도정을 얼마나 잘 했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지역 국회의원들 또한 지역구 현안 사업을 위한 국비 확보를 얼마만큼 했는 가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심사 때마다 중앙언론에서 나오는 “올해도 여야 유력 의원들 지역구에는 ‘쪽지예산’ 관행 여전”같은 보도이다.

그러나 현상으로 드러나는 면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족한 지방재정으로 지역현안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되는 지자체와 예산 확보 규모에 따라 의정활동을 평가 받는 의원들은 자신의 지위와 인맥을 총동원해 국비확보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 의원들과 공무원들 사이에서 “결국 많이 ‘앵겨야’ 국비를 많이 딸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할 자치’ 수십년째 제자리 걸음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 병)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수십년째 8대 2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재정지출은 국가와 지방이 6대 4 규모”라며 “세입보다 세출이 2배나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지자체 재정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다음 연도 정부 예산안을 확정하는 6~7월이 되면 기획재정부 앞에는 중앙부처 공무원뿐 아니라 지자체 관련 공무원들까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라며 “자연히 중앙정부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지방재정의 자율성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은 “악화일로인 지방재정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이 유발되고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등 지역 간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열악한 지방재정으로 인한 과도한 국세 의존, 한푼이라도 국비를 더 확보하기 위해 ‘가난한’ 지자체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적폐’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물론, 지역균형발전 또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의원의 지적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우리나라의 지방 재정자립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지난 2000년 59.4%였지만 2014년 44.8%까지 떨어졌고, 대구의 경우 2000년 75%에 육박하던 자립도가 2014년에는 전국 평균 이하인 42.1%까지 급격히 하락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14년 기준으로 전국 244개 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곳은 12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244개 지자체 중 232곳이 살림살이의 절반 이상을 중앙정부 재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수도권 비대화 등으로 지방재정 수입은 예전과 비슷하거나 줄어 들고 있는 반면, 사회적 약자 계층 증가와 정부 복지정책 확대에 따른 복지재정 수요 급증으로 지출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이런 실정에서도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여전히 8:2 수준에 머무르며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담뱃값 및 주민세·자동차세 등 인상으로 지방 재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이 정치·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누리과정 등 복지재원 갈등 ‘악화일로’

지방 교육재정 문제는 더 심각하다. ‘누리과정’ 등 복지정책 재원을 둘러싸고 일어난 정부와 시도 교육청 간 갈등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은 만 3~5세의 어린이집 등 보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2년 만 5세 유아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해 2015년부터는 만 3~5세 전체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부담되는 재정도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누리과정 집행 예산을 두고 정부는 각 시도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실시해야 된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지방 교육청은 “대통령 공약까지 지방에 떠 넘긴다”며 반발했고, 각 시도 교육감들로 구성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누리과정 ‘보이콧’까지 선언하며 갈등이 극에 달했다.

열악한 지방교육재정이 결국 문제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은 “17개 시도 교육청이 내놓은 2015년도 교육비특별회계 세출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세부사업 기준으로 61.0%의 사업이 감액되어 편성됐으며, 2014년과 사업예산이 동일한 경우는 4.3%, 증액된 사업은 34.7%에 불과했다”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청이 학교시설비 3.8조원, 명예퇴직수당 지원 비용 1.1조원 등 정부가 승인한 지방채 발행분을 반영하고 약 1.8조원의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한 상태에서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리과정은 커녕 지방 교육청의 기존 사업들을 정상진행할 돈도 없어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된 끝에, 국회가 누리과정 집행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부담하고 부족분은 지방채 발행을 통해 충당하되, 정부가 지방채 이자를 부족해주고 누리과정 예산편성으로 인한 지방재정 어려움 해소를 위해 교육부 예산을 증액, 학교시설 개선 등에 우회지원키로 합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일부 교육감들이 대책 없이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은 무모하다면서 지방채 발행을 거부하는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난해와 같은 갈등이 올해도 재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세 대 지방세 비율 조정해야

현재의 중앙의존적 재정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지방세 비중 확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8: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7:3 또는 6:4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를 실현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하능식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수준 및 재정수요 등을 고려한 적정 조세부담 수준으로 조세부담률 인상을 통한 지방세 비중 확대를 지방세체계 개편과 지방세 비중 확대를 위한 첫번째 필요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조세부담률 인상 없이 지방세 비중을 늘리는 것은 국세 수입 감소를 의미하므로 중앙정부의 재정수요 증대에 대한 대응능력을 약화시켜 지방세 확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교육재정과 지방재정의 통합으로 지방세 비중 증대로 인한 자치단체간 세수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재정과 지방재정의 ‘칸막이’를 제거해 복지재정수요 증대를 교육재정수요 감소로 흡수할 수 있고, 지방세 비중 확대시 예상되는 ‘부유한’ 지자체의 재정과잉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방재정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필요조건으로는 지방세 비중 증대에 맞춘 지방재정조정제도의 전면적·동시적 개편을 들었다.

향후 사회 복지 중심의 지방재정 수요팽창에 대응하고 적정수준의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재정을 지방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럴 경우 재원조달 책임과 지출책임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체 재원인 지방세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의존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된 지방교부세와 매칭형 국고보조금을 통합, 중간 형태인 ‘포괄보조금제도’를 도입해 지자체에 보다 많은 재량권을 인정하는 보조금을 만드는 방안도 제시된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의 독립적인 재원 확보 방안으로 △부가가치세 중 지방재원으로 전환되는 지방소비세율 상향조정 △카지노 등 ‘레저세’ 도입 △독일식 공동세제도 도입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감세조치 보전용 지방소득세 인상 △신세원 발굴 및 누적세원 발굴 등이 제시된다.



◇중앙과 지방, 수직→수평 관계로 인식전환 시급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안이 있더라도 ‘의지’가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재정분권을 실현하고 복지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특히 중앙정부의 지자체에 대한 인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은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과 관계를 둘러싼 인식 차이 비롯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관선 지자체장 체제와 달리 민선 지자체장과 지방 교육감은 주민들의 투표로 뽑기 때문에 자신들이 내건 공약과 정책방향이 있는데 중앙정부에서 이를 아랑곳 않고 대통령 공약 실현을 지방에 강요하면서 갈등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중앙-지방정부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해야하는 시대인데, 아직까지 중앙정부의 인식은 과거 ‘수직적’ 관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17개 광역단체장들로 구성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지방자치는 지방정부가 주민의 뜻에 따라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조세체계는 국세에 편중됨에 따라 지방정부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특히 중앙정부는 영유아보육, 기초연금과 같이 국가최저수준의 복지사업에 지방재정을 국가정책사업의 재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지방의 재정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가 지방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극본적 대책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강성규기자 sgk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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