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마더 갤러리'로 남고 싶어요"
"뿌리깊은 '마더 갤러리'로 남고 싶어요"
  • 황인옥
  • 승인 2015.01.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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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김은아 대표

어릴 때부터 친근했던 미술

개관 3주년 미술관의 묵직한 내공

지역 젊은작가의 좋은 동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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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김은아 대표. 사진=박현수 기자 love4evermn@idaegu.co.kr
“무성한 줄기를 키워내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공이 깊은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요.”

지난해 가을, 대구미술에 대한 젊은 리더의 견해를 구하기 위해 우손갤러리 김은아 대표(41)를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이같이 말했다. 갤러리 대표로 일한지 3년여의 약관,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길 만큼 앳된 외모의 그녀가 쏟아낸 우손의 미래 청사진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날 던진 당찬 포부는 긴 여운으로 남았고, 거두절미하고 그녀를 신년 첫 인터뷰이(interviewee)로 낙점하도록 이끌었다.

◇‘좋은 전시’로 ‘좋은 갤러리’ 이미지 만들어

새해 들어 다시 찾은 우손갤러리는 중국 출신인 취 안숑의 전시로 활기가 넘쳤다. 취 안숑은 현대인의 욕망과 그로 인한 병리현상을 중국 수묵화 기법을 차용한 수천 장의 회화 작품을 스톱 모션으로 담담하게 녹여낸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 취 안숑 전시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이 좋아요. 특히 비디오 작품은 대개 끝까지 보는 관람객이 드문데 취 안숑의 비디오는 긴 것은 40분, 짧은 것은 20분 분량인데도 대부분 끝까지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다는 것이겠지요.”

- 취 안숑의 작가소장품(artist proof)인 ‘산해경1’을 우손이 구입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한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취 안숑의 ‘산해경1’ 비디오가 미국의 모마미술관에는 소장돼 있는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드로잉만 있고 비디오 작품이 없어요. 메트로폴리탄이 ‘산해경1’의 비디오를 원했는데 이미 판매가 됐고 작가 소장품 밖에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죠. 우리가 그 소장품을 구입해서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하려고 해요. 작가에게도 좋은 일이고 우손도 미국과의 관계에 물꼬도 트고 우손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줄 수 있게 되니 일석이조죠. 이 때문에 취 안숑이 감사의 뜻으로 저희에게 작품 하나를 선물했으니 일석삼조라고 해야하나요.”

터트리는 전시마다 묵직한 내공을 보여준 우손갤러리는 올해로 개관 3주년을 맞는 신생미술관이다. 그들의 지난 3년간의 행보는 독보적이었다. 갤러리 개관전에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작가인 토니 크랙을 초대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미술의 거장 야니스 쿠넬리스전, 프랑스 현대 미술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 바르텔레미 토구오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가들의 전시를 1년에 서 너 차례 정기적으로 이어오며 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좋은 이미지를 쌓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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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전경
이 때문에 벌써부터 ‘좋은 전시’를 하는 갤러리라는 이미지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 지방의 신생갤러리가 국내 미술계에 이러한 평판을 쌓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전시 중인 취 안숑의 개인전은 그 연장선에 있다.

- 우손 만의 작가 선정 기준이 있을까요,

“‘인기 작가라고 다 비싼 작가도 아니고, 비싼 작가라고 다 좋은 작가는 아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저희 갤러리는 그 중에서도 좋은 작가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려 하고 있어요.”

- ‘좋은 작가’라 어감이 좋은데요. 좋은 작가의 범주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작가야말로 좋은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시작은 미미하지만 긴 시간 동안 자신만의 히스토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며 존재감을 키워가는 검증받은 작가들이 그런 작가군에 속하겠죠. 그들에게는 시대에 부흥하는 화풍으로 반짝하는 가벼운 작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내공이 있지요.”

- 우손에서 전시한 작가들이 그런 작가들일텐데. 그 중에서도 한 작가를 꼽아 설명한다면요.

“그리스 출신의 야니스 쿠넬리스의 경우가 그렇지요. 그는 40년 이상 세계적인 현대예술의 거장 자리를 지켜오며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스승 역할을 해 왔어요. 1958년에 도식적 기호와 숫자 글자를 종이 위해 붙이는 작업을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에는 설치와 퍼포머스 형태의 입체작업을 주도했지요.”

- 쿠넬리스야말로 현대미술 초기에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힌 선구자로 꼽히죠.

“1960년대에 살아있는 동물을 작품에 직접 개입시켜 반미학적이면서 현실적인 공간을 창조했었지요. 데미안 허스티,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현대미술 영역에 살아 있건 죽어 있건 동물을 소재로 할 수 있게 그 영역을 대폭 넓힌 것이 쿠스넬리니까요. 이러한 쿠넬리스야말로 미술인들이 존경하는 좋은 작가 중 최고의 반열에 속하지 않겠어요.”

- 서울의 유명 화랑들도 하지 못한 이런 거장의 전시를 어떻게 지방의 신생미술관이 성사시킬 수 있었죠.

“사실 1년동안 공을 들였어요. 그분이 전시 일정이 원채 많고 상업 전시보다 미술관 전시가 많아 굳이 저희 갤러리 전시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계속 찾아가서 저희 우손의 미래를 설명하고 앞으로 저의 포부를 알리고 이런 갤러리가 되고 싶은데 그 선에 동참해 달라고 1년이나 부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젊은 오너가 그러는데 안쓰러워 허락한 부분도 있을테고…. 그렇게 1년동안 공을 들였더니 공간을 보여달라고 했고 마침 갤러리의 공간이 맘에 들고 전시 작가 목록을 보고 저의 의도를 믿고 전시를 허락해 주셨어요.”

◇품격 있는 미술관 향한 김은아 대표의 행보

우손갤러리의 전신은 석 갤러리다. 10여 년 동안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고 국내 근현대미술을 집중 조명해왔다. 이후 수성구 만촌동 유성건설 사옥 2층에 현대미술 중심의 우손갤러리를 새롭게 개관해 운영해오다, 이 두 갤러리를 합쳐 구 석갤러리 자리인 봉산문화거리 내에 3층 건물을 신축해 우손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그녀는 새롭게 개관한 우손 대표로 취임했다.

김 대표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이후 디 갤러리 아시아지점 실장을 역임하고, 지난 2013년부터 우손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 미술과의 인연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어머님이 미대 출신이시고 아버님 또한 오랫동안 미술 콜렉터로 세계 곳곳을 다니셨죠. 집안 환경이 일찍부터 미술을 접하도록 이끌었지요. 이러한 환경 덕분에 중학교까지 미술은 제게 취미로 생활화됐어요.”

- 뉴욕에서 10여 년간 유학했다고 들었어요. 의외로 전공이 디자인이군요.

“디자인이야말로 미술과 패션,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미술로 판단하고 선택한 전공이었어요.”

- 유학 후 국내에 들어와 다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는데, 디자인에서 미술사로 또 한 번 선회한 것인데요. 당시 갤러리 운영에 대한 포부가 있었나요.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도시 전체가 문화예술이 일상화된 뉴욕에서 10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면서 미술관 전시와 아트페어를 수없이 다녔어요. 그러면서 당시에 유행하는 사조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미술에 대한 흥미도 쌓여갔죠. 미술사 공부는 미술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죠. 제가 디자인 전공자답게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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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전시장.
- 졸업 후 일한 곳이 독일의 디 갤러리 아시아지점이군요. 김 대표가 갤러리 운영자의 마인드를 형성한 곳이 디 갤러리라는 것인데 어떤 곳인지 궁금한데요.

“디 갤러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메인 갤러리를 두고 있는 히스토리(history)적으로 중요한 사조의 화랑이에요.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마숑 등의 초현실주의나 카렐 아펠, 꼬르네이유 등 코브라에 정점을 둔 갤러리지요. 제가 근무하던 아시아지점을 통해 한국 작가를 비롯한 아시아 작가와 유럽 작가의 교환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졌어요. 그때 많은 유럽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미국 중심에서 유럽으로 시야를 넓히게 됐죠.”

- 젊은 나이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인데요. 우손을 맡고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당장 눈앞의 명성과 이익에 연연해 하지 않고 먼 미래를 보고 갤러리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좋은 전시를 품격있게 이어가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희가 그동안 해 왔던 쿠넬리스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은 작품 판매에 호의적인 작가들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길은 우리 갤러리가 ‘품격 있는 좋은 갤러리’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에요.”

◇지역 젊은작가들과 역사 만드는 동반성장 모델 될 터

- 대가들의 전시 위주가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 지역작가 소외를 낳은 것도 사실인데요.

“개관 후 짧은 기간 안에 국·내외에 갤러리를 알리기 위해 대가 위주의 전시를 해 왔어요. 하지만 국내 작가 또는 지역의 젊은 작가를 위한 준비도 차곡차곡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우손 옆에 40㎡ 면적의 작은 전시장을 하나 더 오픈하는데요. 이 전시장은 이들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 지역의 젊은 작가들에게는 솔깃한 소식이 될 것 같아요. 젊은 작가들과 우손의 관계 정립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건이겠네요.

“우손은 유명한 작가 불러서 한 두 번 전시하는 형태는 의미를 두지 않아요. 자신의 세계를 정립하기 시작한 30대 초반의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 그가 노년이 될 때까지 한 배를 타고 함께 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저희의 방향성이지요. 그들에게 우손은 집 같고 엄마 같은 갤러리로 남고 싶어요.”

- 그런 갤러리 개념은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데요.

“유럽은 보편화된 개념인데요. 유럽에는 대가들의 마더(mother) 갤러리가 시골의 아주 작은 갤러리인 경우들이 흔히 있어요. 그들은 무명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마더갤러리를 잊지 않고 유명해져도 그 곳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전시를 하지요. 어떤 경우에는 쇠락한 마더 갤러리를 유명해진 그들이 다시 살려 놓을 만큼 관계가 끈끈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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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 갤러리가 되기 위한 출발점은 높은 안목으로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 일텐데요.

“철학이 확고한 작가가 중요하다고 봐요. 확고한 의지 없이 시류에 흔들리는 작가, 먹고 살기 위해 생산과 타협하는 작가는 장기적으로 큰 작가로 성장할 수 없어요. 최고의 개념은 가지고 가면서 대중과 소통하며 탄탄하게 변화해가는 그런 작가가 우리가 찾고 있는 작가에요.”

- 우손갤러리에 전속되면 어떤 지원이 따르나요.

“무엇보다 우손이 만들어가는 색깔이 전속 작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자기 세계를 형성해 갈 때까지 우손이 작가들의 철학이 흩어지지 않도록 경제적인 지원도 해 나가야 되겠죠.”

- 그동안 갤러리를 운영하며 보람이 있었을텐데요.

“쿠넬리스가 프랑스에서 열린 미술관 전시도록에 우손 전시 사진을 넣고, 이태리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는 아예 저희 도록을 그 갤러리에 판매했어요. 쿠넬리스에게 우리 전시가 꽤 흡족했던 것이지요. 우리로서는 그런 대가와 한달 동안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그분이 우리 갤러리를 좋게 기억하고 유럽에 소개해 주시니 더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어요. 이처럼 우리 갤러리에서 전시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우리 갤러리를 흡족해 하고 우리의 존재를 해외에 퍼트리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지요. 이런 것들이 우리의 히스토리를 한층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요.”

- 지난 3연여 기간이 정체성 형성의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가 돼야 할 것 같은데. 향후 계획은 어떤 것이며, 궁극적으로 어떤 갤러리가 목표인가요.

“앞으로도 작가와 직접 컨텍(contact)하는 갤러리라는 원칙을 고수해 나가고 싶어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작가나 상업성 높은 작가도 좋지만 국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해외의 좋은 작가들을 알리는 일에도 책임의식을 가지고 꾸준하게 병행해 갈 예정이에요. 그러다보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경하는 뿌리 깊은 좋은 갤러리’가 되지 않겠어요. 이를 위해 올해도 3월에 설치미술의 거장인 데니스 오펜하임과 9월에 지역의 중진 작가 최병소 등의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에요.”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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