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엔 경쟁이 없다
예술엔 경쟁이 없다
  • 승인 2015.06.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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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주
미술평론·미학
“예술엔 경쟁이 없다.” 사진작가 김미루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대목이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눈에 들어와 한참을 맴돈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자리매김 되는 현실에서 예술 또한 경쟁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다양한 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입증해야한다. 예술가들도 지원 시스템에 의한 예술 활동으로 참가함으로써 경쟁 아닌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의 말은 현실과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병철은 스스로 세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회를 성과사회라 이름 한다. 성과를 향한 압박으로 탈진한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을 진단하면서 그는 행동하기를 멈추는 부정의 자세를 요청한다. 성과에 대한 압박은 활동의 과잉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 과잉의 근본문제는 사색할 기회를 앗아간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외부의 자극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사색함을 통해 정신의 태어남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사회는 나의 피로, 너의 피로만이 있는 상태로 내몬다. 개별화와 고립을 가져오는 고독한 피로, 분열적인 피로에서 인간은 오직 ‘자아’만을 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향기’에서 “느긋함”으로 세계와의 관계 맺기를 옹호한 후기 하이데거를 언급하며 행동과잉으로부터 벗어나기에 대해 말한다. 느긋함은 결연한 행동에 맞서는 “맞쉼”으로서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계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주는 것이 된다. 반대로 행위의 결단에 장악 당한 삶은 깊은 권태의 원인이다. 어떤 형태의 사색도 알지 못하는 활동적 삶의 이면으로서의 권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니체의 말을 빌려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수동적인 활동과잉이 되기보다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를 통한 사색적 삶이 그가 보기에 더 활동적이다. 활동과잉은 정신적 탈진 증상으로 새로운 구속을 낳는다. 행동의 주체는 잠시 멈춘다는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 “수줍음”, “자제” 등도 행위의 강조에 맞서는 표현들이다. 한병철이 보기에 머뭇거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수동적인 형태의 행동과잉은 어떤 자유로운 행동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참선을 자신에게 닥쳐오는 것에서 스스로를 해방함으로써 공에 도달하려는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의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색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위라고 한다면 예술 활동은 근본적으로 사색적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예술이 머뭇거림과 수줍음, 자제의 발길로 존재의 언저리를 맴돌지 않고 산출될 수 있겠는가? 또 한편으로 한병철이 성과를 향해 치닫는 고독한 피로에 대해 맞세우는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의 양상을 우리는 예술 활동에서 보게 된다. 그것은 자아를 개방하여 세계가 그 속에 새어 들어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접근을 허락하는 피로, 만져지고 또 스스로 만질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피로, 그런 피로를 통해 비로소 한 곳에서의 머무름이 가능해진다. 이는 자아의 줄어듦과 세계의 증대로 나타난다. 이러한 근본 피로는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는 탈진 상태가 아닌 특별한 능력으로 영감을 주고 정신을 태어나게 한다. 이러한 깊은 피로는 치유의 형식, 회춘의 형식으로 그러한 상태에서 세계는 경이감을 되찾게 한다.

그는 생존을 절대화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관심은 좋은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생존의 과정으로 환원된 삶이 벌거벗은 생명이 되어 생동성을 잃어버렸다면 예술은 그 생동성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힘이 있다. 예술이 삶에 포섭되어 삶으로 내달릴 때 그것은 예술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삶과 함께 있지만 삶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사색할 수 있는 머무름의 시간을 가질 때 예술은 비로소 예술이 된다. 예술이 가진 그 본래의 모습으로 세계에 집중한다면 무차별성의 시간인 우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시간은 평화로웠다라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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