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보름 쇠기’
‘개 보름 쇠기’
  • 승인 2015.09.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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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 주필
과거 정월 대보름날에는 개를 굶겼다. 보름날 개에게 음식을 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꼬인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도 여기서 유래한다. 모두들 잘 먹고 지내는 명절날에 남들처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낼 때 쓰는 말이다. 한가위를 앞두고 덕담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개 보름’ 운운하니 송구스럽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서민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어 먼지만 날리는 추석임을 정부와 당국자들이 알아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보리수염은 지난 1년간 금연을 했다. 지난해 9월 담뱃값 인상추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금연에 돌입했다. 건강을 챙기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정부의 꼼수’에 화가 치밀어서였다. 하루 2~3갑 씩 줄담배를 피웠던 터라 인상된 담뱃값으로 치면 하루 1만~1만5천 원꼴로 절약한 셈이다. 한 달 30만~45만 원가량이고, 1년이면 360만~540만 원에 달한다.

금연 실패자들의 부아를 돋우는 얘기인 줄 알면서도 굳이 담뱃값 인상을 끄집어낸 이유가 있다. 올해 초부터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에 도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정부는 이미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 담뱃값 인상 당시 정부는 세수 증대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해서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줄었던 흡연율은 원상회복됐고 결국 골초들만 왕창 털이 뽑혔다. 게다가 늘리겠다던 금연사업 예산은 되레 줄였다. 세수부족에도 한사코 증세는 하지 않는다면서 서민들의 깃털만 뽑는 ‘편법 증세’로 일관한 셈이다.

서민들의 애옥살이 살림을 옥죄는 건 담뱃값 인상만이 아니다. 집값을 부추겨 내수를 부양하는 정책은 너도나도 빚을 내 집을 사게 했고 이 때문에 가뜩이나 얄팍했던 지갑이 빈 지갑이 됐다. 부동산 경기부양이 내수를 살리기는커녕 주거비 상승과 가계대출 급증만 초래하자, 정부는 갑자기 대출규제에 나서면서 “언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했느냐”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정책의 실패만 아니라 가혹한 세정(稅政)도 문제다. 특히 대구국세청의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심각하다. 대구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전국 시·도 가운데 바닥권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역의 국세비중도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대구국세청은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식 세무조사를 하면서도 세정지원은 미미하다는 지적을 당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가계지출 현황을 보면 교육비와 통신비 외에 보건·의료비 비중이 다소 높다.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건강보험 제도를 가진 우리나라가 보건·의료비 비중이 높다고?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은 G20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복지비 지출 비중이 낮다. 10%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다른 국가들이 복지비를 통해 의료 혜택을 간접 지원하는 반면 한국은 복지지원이 턱 없이 부족한 결과다.

그렇다면 복지비는 비용인가. 보수 인사들과 재계는 걸핏하면 복지 지출을 예산 낭비라고 한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고소득자와 수출 대기업에겐 복지비가 분명 낭비일 수 있다. 하지만 복지 지출은 정부가 오매불망 바라는 내수 살리기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노인들이나 어린이들에게 지출하는 연금과 급식비가 국외에서 소비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 복지비가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생명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고 불황에 허덕이는 내수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울 수도 있다.

우리 경제는 현재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다. 중소기업이 몰려있는 내수업종은 이미 빈사상태고, 정부가 갖은 특혜를 주면서 애면글면 지원했던 수출 대기업도 중국의 경기둔화, 신흥국의 위기 고조 등 대외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의 금리 동결로 한숨 돌리긴 했으나 한국경제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대외 악재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쉽게 개선될 수 없다. 반면 내수는 다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된다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 대기업들이 만드는 일자리는 1년에 2만개 남짓이다. 나머지 일자리는 모두 중소기업이나 영세 개인기업이 만든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수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 되는 수출대기업 위주 정책을 수십 년 째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1970~80년대 고도성장시대의 패러다임을 답습하고 있으니 1인당 국민소득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게다.

‘머리 좋은’ 우리 경제관료들의 베끼기 실력도 졸속이고 엉망이다. 미국이 추수감사절 이후 진행하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모방해 대다수 유통업체가 참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인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다음달 초부터 2주간 갖는다는 기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릇 정책은 실기(失期)해도 곤란하지만 기대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불과 3주 전에 각 유통업체에 통보했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입이 튀어나왔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물량 확보조차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깃털 뽑는 실력이 엉망인데다 국민소득까지 뒷걸음질 치게 하는 경제팀은 경질하는 게 옳다. ‘개 보름 쇠듯’ 추석을 맞는 국민들에게 추석 선물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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