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넋두리
추석 넋두리
  • 승인 2015.09.30 09: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지방자치연
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며칠 전부터 슈퍼달이라는 말이 돌아 무슨 뜻인가 했더니 상시보다 달이 크다는 의미였다. 외래어가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달이라는 명칭 앞에 슈퍼라는 영어를 붙이는 것이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윗옷은 양복, 아래는 한복을 입은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언어감각 부족 때문일까. 모양새에 따라 보름달, 반달, 초승달 등 이름이 있지만 달은 그대로 달이다.

33년 만에 보는 큰 달이라고 해서 아파트 마당으로 나갔다. 정말 컸다. 꽉 찬 밝은 달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둥실 떠 있다. 토끼가 방아 찧고 있다는 그림자 그림이 뚜렷하다. 고층 아파트의 틈 사이로 보이는 달은 운치와는 거리가 멀다. 밋밋한 시멘트 덩어리의 건조물과 달 궁합이 맞지 않는다. 자연은 늘 그대로인데 인간이 사는 모습은 변화 변화무쌍이다.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들 쉽게 말하지만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올해 추석은 찜찜한 추석이었다. 좋지 않은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찌꺼기가 마음에 계속 붙어 있다. 명절 하루 전이면 전도 붙이고 음식 장만을 하던 제수씨가 연락이 없다. 아내가 전화와 문자를 몇 차례 보냈는데도 답이 없다면서 투덜거린다. 무슨 일일까. “내가 저들에게 잘 못한 일도 없는데”. 아내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모든 가족이 다 모일 것을 예상해서 장을 본 것 같은데 아내의 눈치를 보니 서운함이 역력하다.

추석날에도 동생 가족 모두가 오지 않았다. 여느 때는 추도식을 마친 뒤 근교에 있는 부모 산소에 동생, 조카들과 함께 성묘를 했지만 올해는 그것도 못했다. 부모 산소에 관심이 많은 동생네는 틀림없이 성묘를 다녀왔을 것이다. 따로 날을 정해서 혼자라도 산소에 다녀올 생각이다. 명절 때 가족 간의 스트레스가 많다는 말이 우리 집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다. 나이 오십이 넘는 제수씨가 아내와 같이 음식을 장만할 때 자식들이 도우는 일도 별로 없고 타지에 사는 조카며느리도 일을 다 마친 뒤에 나타나니 심사가 틀렸을 것이다. 자기네 아이들도 다 성장했고 몸도 성치 않은데 나이 들어 명절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있다. 어느 땐가 부모 추도식을 죽 준비해 오던 아내가 동생 가족에게 “이제 추도식을 따로 하지 말고 명절 때에만 드리자”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동생의 심사를 어지럽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말이 있은 뒤 동생이 부모 추도식을 따로 모시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의 명절 문화가 지금 이렇게 변하고 있다. 찜찜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의 큰 아들이 서울로 돌아간다는 전화가 아내에게 왔다. 그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오해가 좀 풀린 것 같았다. 이런 결론을 얻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자기 가족 중심으로 가고 있다. 각자의 사는 방식이 다르다. 자식들의 머리가 커 가니 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괜한 문제로 시끄럽게 하지 말자. 서로 편 한대로 사는 것이 현명하다.’ 결코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아이 세대들은 본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시조는커녕 조상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다. 그저 자기네들의 문화 속에서 살고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른들이 끼일 자리가 없다. 유독 추석 명절에 인천 공항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가족만의 외국여행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아니라 추석 외국여행이 되었다. 추석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흩어진 가족들을 모으는 명절이 자연스레 사그라져 가고 있다.

올해는 송편 맛도 못 봤다. 단골로 동생네가 맡았던 떡 부조가 끊긴 것이다. 오비이락이라더니 추석에는 아들 내외도 오지 못했다. 대전에서 출발하던 중 갑자기 며느리가 편두통을 만나 응급실에 까지 갔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머물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 뒀는데 떡심이 풀린다. 손녀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추석날 방에 박혀 공부하는 외손녀를 보면서 명절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생색을 내는 것처럼 손 큰 아내에게 말을 던진다. “이제는 명절 음식을 따로 하지 말고 한때 먹을 정도의 음식을 조금만 장만하자고”. 넋두리를 했지만 찜찜한 추석이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