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밥
고양이 밥
  • 승인 2015.10.0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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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
가을 아침이다. 가로수를 따라 걷는다. 기분이 산뜻하다. 오늘 아침 기분이 산뜻한 것은 계절(가을) 탓만은 아니다.

가로수 밑에 놓은 고양이밥이 눈에 자주 띄기 때문이다. 진설해 놓은 고양이밥의 주 메뉴는 개사료가 많고, 고양이밥 옆에는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에 마실 물까지 준비되어 있다. 짧은 거리를 걸었지만, 가로수 밑에 차려진 고양이밥을 자주 보게 되어, 길가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보았다.

고양이밥상 차리기가 거리에 유행(?)이 되다시피 한 것은 KBS일일 연속극 ‘고양이가 있다’가 방영되고 나서였다. 방송의 사회적 영향이 막강한 만큼, 방송인들은 방송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되고 투철한 사명감과 높은 직업윤리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쉽고 절실한 것은 이웃(남)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들고양이를 위해 먹이를 진설해두는 것은 숭고한 동물사랑,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가치 있는 봉사인 것이다.

개는 사람(주인)을 잘 따르지만, 고양이는 천성적으로 장소(주인집)에 대한 애착심이 없다.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길러도 어느 정도 자라면 원도 미련도 없이 가출을 하여, 주인 가슴에 애틋함으로 남는다.

필자의 경우 양견(養犬) 이력은 45년이 되었지만, 고양이를 기른 것은 채 반년도 못 된다. 고양이가 호랑이과에 속하는 게 아니라, 범이 고양이과에 든다. 산속의 호랑이는 우리 강산에 한 마리도 살아남은 게 없지만, 호랑이 원조인 고양이는 그 수를 셀 수도 없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 먹이가 부족해 고양이끼리 싸움이 붙기도 하고, 힘이 약한 고양이는 힘 센 고양이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고양이를 집에 잠시 (몇 달 정도) 기른 것은 몇 년 전으로 기억이 되는데, 자세히 짚어보니 십년도 넘었다. 꼬리가 없는 얌전한 노랑 고양이 새끼가 우리 집에 나타나 집사람이 밥을 주고 거두었더니, 우리 집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마당에는 기르는 개들이 몇 마리 돌아다녀, 우리 집 고양이 야옹이는 마당에서 살지 못하고 담 위에서 졸거나 앞집 뒤안에서 지내다 끼니때가 되면 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담 위에 밥을 차려놓고 “야옹아!”하고 부르면 기다리기나 한 듯 나타나 먹이를 달게 먹었다.

얼마 뒤였다. 먹이를 담 위에 차려놓고 “야옹아!”를 목메게(?) 연발해도 야옹이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야옹아!”하고 부르니, ‘애용!’하는 화답이 들렸다.

이튿날도 “야옹아!”하고 부르니, ‘애용’하면서 앙징스런 잿빛 토끼모양의 고양이 새끼가 나타났다.

우리 ‘야옹이’는 꼬리가 거의 없는데, 새 식구 ‘애용이’는 꼬리가 귀부인 털목도리 같이 길고 멋졌다.

애용이가 담 위에 앉는데, 꼬리를 단정하게 잘 접어 전혀 보이지 않고 깔끔했다. 애용이는 우리 집에서 나갈 생각을 않고 즐겨 우리 식구가 됐다.

생김새도 잘 생겼고 울음소리도 ‘야옹’ 아닌 ‘애용’으로 그야말로 우리식구들이 ‘애용이’를 애용(愛用)하게 되었다.

한동안 ‘야옹이’를 한참 잊고 살았는데, 야옹이가 다시 나타나 담 위의 아지트를 차지했다. 야옹이는 새끼고양이 애용이를 보듬어 주어, 다툼은 없었고 형제처럼 의초로웠다.

애용이가 자라자 야옹이와 더러 다투는 모습이 보이더니, ‘애용이’ 대신 ‘야옹이’가 가출(家出)해 버렸다. 야옹이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쳐 낸다’는 말은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일호의 차착도 없는 격언(格言)이었다. 애용이도 몇 달 뒤엔 큰 고양이가 되어 모습이 의젓해 졌다. 애용이도 야옹이처럼 가수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처럼 말없이 집을 떠나버렸다.

얼마 전 까지는 고양이가 두 마리나 되었는데, 이제는 고양이가 한 마리도 집에 남지 않았다. 속담을 다시 들먹여 본다. ‘꿩 잃고 알도 잃었다’.

고양이가 두 마리 다 가출했지만, 마당에 뛰노는 개들은 주인과 눈만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세상살이에 절망은 없다.

둥근달이 라일락 그늘까지 환희 비추는 그 해 팔월 한가위 날 밤이었다. ‘애옹! 애옹! 애옹!’ 귀 익은 고양이 울음소리다. 밝은 달 아래 애묘(愛猫) ‘애옹이’의 모습이 보였다.

추석날 옛집을 찾아온 것이다. 고양이는 달력도 없는데 어떻게 추석날 밤 옛집을 찾아온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한 일이다. 과학적으로 동물에게도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어 달이 환하게 밝으면 귀소본능이 작동하여 고향 옛집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식구들이 애용이의 귀가를 박수로 맞고, 추석상을 올렸다. 다음해 정월대보름 밤에도 애용이가 찾아와 천재 고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애용이를 만나는 기쁨으로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태풍 ‘매미’의 기습 강타로 보름달이 실종되고 거센 태풍 앞에 라일락나무도 부러져, 다시 애용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애용이 덕분에 필자는 들고양이의 대부(代父)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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