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군불만 때지 말고 제대로 하라
개헌, 군불만 때지 말고 제대로 하라
  • 승인 2015.11.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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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 주필

정치권 일각에서 다시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양새이기는 하나 본격적으로 군불을 때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못 먹는 감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바둑용어로 하면 응수타진이다. 하지만 이번 ‘개헌 군불’에선 불온하고 불순한 기운이 감지된다.

새누리당 내에서 개헌은 금기어였다. 지난해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론이 제기됐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블랙홀론’을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여권에서는 개헌 언급 자체를 삼갔다. 지난해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대통령의 ‘진노’에 하루 만에 사과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동안 개헌 언급을 앞장 서 경계했던 ‘친박’ 인사들이 잇달아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맨 먼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며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 농어촌 지역 대표성 문제의 해결책으로 양원제 개헌론을 제기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권력구조가 아닌 정책 일관성과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 담보를 위한 개헌 주장이어서 일단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원집정부제 개헌 주장이 나오면서 ‘친박’들의 잇단 개헌 발언에 저의가 있음이 드러났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지낸 ‘친박’ 홍문종 의원은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총리를 두는 이원집정부제가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외교 대통령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추대하고, 총리는 ‘친박’ 최경환 부총리를 내세운다는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보리수염이 이번 개헌 논의가 불온하고 불순하다고 하는 이유도 이 대목에서다. 국민들에게서 가져간 권한을 돌려주는 ‘분권 개헌’이 아니라 ‘친박 정권’의 연장만을 위한 개헌론이기 때문이다. 홍 의원의 이원집정부제 개헌 주장이 여론의 역풍을 맞자, 나머지 ‘친박’들은 “지금은 민생에 주력할 때”라며 재빨리 불끄기에 나섰다. 개헌론에 불을 붙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홍문종 의원이 ‘점화조’라면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유기준 윤상현 김재원 조원진 의원은 ‘진화조’ 역할을 맡은 셈이다.

‘친박’들의 개헌론 제기는 분명 ‘계산된 애드벌룬’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근접거리에 있는 최 부총리가 개헌이란 거대 담론을 놓고 지나가는 말로 끄집어낼 리 만무하다. 박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막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떨어뜨리는 개헌론을 ‘친박’ 인사들이 먼저 제기한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개헌론을 제기했을까. 어차피 내년 4월 총선만 끝나면 여권 내 권력지형은 청와대에서 차기 대선주자 군을 중심으로 급속히 쏠리게 돼있다. 청와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정도 권력누수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먼저 개헌론에 대해 선수를 치고 나와 권력누수를 차단하는 효과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특히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은 박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권력 누수’ 방지와 더불어 퇴임 후 구상까지 연결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원집정부제는 TK를 볼모로 잡은 박 대통령이 이를 바탕으로 국회 내 영향력을 이어간다면 ‘친정 체제’구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친박’들의 뜻대로 권력구도를 재편하는 개헌은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더 크다.

권위주의 시대이후 개헌이나 권력구도가 집권 세력의 의도대로 바뀐 경우가 없다.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2/3의 찬성을 거쳐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과반의 투표와 과반의 찬성을 거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더욱이 야당의 반대를 극복하고 개헌을 성사시키려면 여권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친박’은 여권 내에서도 현재 소수파다. ‘친박’의 의도대로 개헌론이 굴러갈 수 없다는 뜻이다.

청와대도 개헌론에 선을 긋고 있기는 하다. 경제살리기와 4대개혁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을 거론할 때가 아니란 입장이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이후 어떤 식이든 정치권은 개헌을 거론할 것이다. 청와대 역시 조기 권력누수 차단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를 대비한 개헌 구상을 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헌법체계, 즉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개정 헌법이 나와야 한다.

보리수염은 현행 헌법이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하고 동의한다. 그렇다 해도 최근 ‘친박’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만을 노린 정략적 헌법 개정은 곤란하다. 보리수염이 본란에서 누누이 주장했듯이 국민들에게 온전히 주권을 돌려주는 ‘분권 헌법’, 다시 말해 ‘국민주권 헌법’으로 개정해야 한다. 개헌이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만큼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헌법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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