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청에 대한 추억
경북도청에 대한 추억
  • 승인 2016.02.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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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경북도청이 이사하는 첫날, 아침부터 실비가 내렸다.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이 있는데. 그 옛날 구질구질 비 오는 날 이웃이 이삿집에 위로로 던진 말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안동 새집으로 이사하는 경북도청이 번창하고 도민들이 잘 살기를 기원한다.

나에게는 경북도청에 대한 유별난 기억들이 있다. 60여 년 전 경북도청은 지금의 중앙공원 자리에 있었다. 가끔씩 들리는 그곳, 선화당 주위를 거닐면서 옛일을 돌이킬 때가 있다.

2·28의거 당시 도청은 성난 학생들의 분풀이 표적 대상이었다. 의식 없이 돌을 마구 던졌던 기억이 있다.

산격동 경북도청사는 웅도의 표상이었다. 대구시를 산하에 두고 있었던 경북도는 시·군 공무원들에게는 로망이었다. 대구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경북도로 전출할 꿈을 가지고 공무원소양고사에 매달린 때가 있었다.

뒷줄이 없는 하위직 공무원의 도 진출은 소양고사에서 등내로 드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상급기관이 일 년에 한 번씩 소양고사를 실시하여 하급기관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실적주의 인사제도의 하나인 셈이다. 도청 근무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업무상 도의 지시 감독을 받던 시절이었으므로 상급기관과의 관계는 말 그대로 상명하복이었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뙤약볕에 엿가락처럼 물렁거리던 더운 여름날이었다. 당시 결핵환자를 수용 보호하는 복지시설 업무를 맡고 있을 때였다. 대구시립병원에 격리되어 있던 무의탁 결핵환자들을 신설된 민간 복지시설로 이송하게 되어 생머리를 앓고 있던 대구시가 큰 짐을 덜었다고 느긋해 했지만 관물을 수년간 먹고 살아온 결핵환자들의 질긴 생떼를 끊기는 역부족이었다.

사흘또래 시장실로 몰려가서 행패를 부리고 원장이 돈을 떼어 먹었다고 투서를 넣는 것이 일과였다. 그들이 도청으로 몰려간 것이다. 여름 땡볕에 도 청사 마당에 30여명의 환자들이 골골거리며 가래침을 뱉고 벌렁 누워 있거나 웃통을 벗어젖히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다급한 도 사회과 직원의 전화를 받고 도착하니 시청 직원이 왜 왔냐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나의 멱살을 잡고 벌 떼처럼 덤빈다. 이들의 평소 행태를 잘 알고 있던 도청 출입 기자들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겠다고 겨우 달래서 도청 버스에 태워 처소로 돌려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결핵환자시설의 연탄재고까지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구시가 경북도에서 분리, 광역자치단체가 되었을 때 나는 영진전문대 부설 지방자치연구소장으로서 경북도와 밀접한 인연이 있었다. 도와 시·군 공무원에 대한 지방자치교육, 도의회·시·군 의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연수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시·군을 순회하면서 주민자치 홍보에도 힘을 보탰다. 수시로 각종 도 행정에 대한 자문에 응했다.

광역단체로서 경북도와 대구시는 독립적인 위치에 있지만 시장과 도지사는 늘 동반자의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에서 시장과 지사는 서로를 치켜세우면서 형제단체의 우의를 연출하는 일이 예사였고 그런 장면을 보는 시·도민들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안동의 새 청사에 가본 일이 있다. 검무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영화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경북도청의 자태가 웅장했다. 현대식 건물에 한국 풍을 가미한 청사가 이채롭다. 이색적인 넓은 분수대를 앞에 두고 자리 잡은 메인건물에 기와를 얹어 고전의 멋을 더해 줘서 친화감이 간다. 약간 추운 날씨라 청사 주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알뜰히 살펴보자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임 중 도청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관용 지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경상북도는 23개 시·군을 안고 있는 덩치 큰 광역자치단체다. 지방자치제 재도입후 시·군 기초단체의 자치력이 확대됨으로써 도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다운되었다. 하지만 중앙과 하급 자치단체의 중간적 위치에서 협의·조정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새 도청사가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 공무원들의 이해 노력이 필요하다.

불편한 점이 다소 있더라도 새로운 기분으로 공기 좋은 곳에서 축복 받은 삶을 시작한다는 자세를 가져보자. 경상북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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