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농부, 그리고 남과 북
사자와 농부, 그리고 남과 북
  • 승인 2016.02.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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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이솝우화에 사자와 농부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이상한 숫사자 한 마리가 살았었다. 이 사자가 이상하다고 한 것은 숫사자로서 당연히 암사자를 사랑해야 하고, 또 그것이 자연의 이치였건만, 이 이상한 사자는 어느 때 한번 숲길을 지나가던 인간의 아가씨를 보고 반해버렸던 것이다. 이 사자는 첫눈에 반한 그 아가씨를 몰래 따라갔다.

그 아가씨는 근처에 사는 농부의 딸이었다. 사랑의 아픔에 며칠을 고민하던 이 숫사자는 마침내 큰 결심을 하고 농부의 집에가 문을 두드렸다. 사자를 발견한 농부는 깜짝 놀랐다. 사자는 큰 절을 하고 농부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요지는 농부의 딸과 자신을 결혼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겁에 질렸던 농부는 딸과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어쨌든 딸과 상의를 마친 농부는 사자에게 다가와 말한다. “사실 우리 딸도 사자님이 싫지는 않은 모양인데, 혹시 사자님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상처를 입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데 사자님이 이빨과 발톱을 뽑아주시면 결혼을 허락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랑에 눈먼 이 숫사자는 선뜻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뽑아버렸다. 그야말로 사랑에 미쳐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랑에 빠진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후 사자는 행복했을까? 잘못된 사랑의 종말은 비참했다. 본래 사자의 위엄과 사자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은 그 갈퀴와 이빨과 발톱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상징인 이빨과 발톱이 빠지자, 비록 갈퀴는 남아있었을지 몰라도, 사자의 처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자칫 잘못해서 사자의 비위를 건드려 딸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농부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농부는 사자에게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기는커녕, 이제 나약해져 누구도 해칠 수 없는 사자를 몽둥이로 패서 죽여 버렸다.

최근의 남북관계가 이 우화에 비유될 수 있을까?

남과 북도 마찬가지이다. 남은 악명 높은 독재정권 그것도 3대에 걸쳐 세습한 독재정권의 압재에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을 당연히 동포로서 사랑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사랑의 결과는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증오해야할 북한정권 자체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수소폭탄)과 장거리 미사일의 포기를 위해 강력한 대북 봉쇄정책을 펴겠다고 전면적으로 선언했다.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 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다”면서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체제 붕괴’를 처음 언급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이 핵 포기를 선택할 때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남한이 북한에 대해 그동안 자신 있게 제안했던 모든 통일방안과 정책의 이면에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박 대통령의 지적대로 우리 정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부터 현재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까지 북의 갖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공생의 남북관계 구축을 위해 포용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응답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이북지역을 불법적으로 점거해있는 불법 반국가단체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규정처럼 북한과 북한주민은 우리의 평화통일 노력의 대상이 되는 지역이고 포용해야할 동포이다.

북한의 결정적 도발과 한반도 위기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리능력은 북한에 대한 대북정책과 주변 4강에 대한 외교정책의 기본이 된다. 그런 기본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면 안 된다. 사랑에, 그것도 잘못된 대상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의 위엄과 수단인 이빨과 발톱을 포기해버리는 어리석은 사자가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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