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계좌 개설은 험난한 ‘통장고시’
은행계좌 개설은 험난한 ‘통장고시’
  • 정민지
  • 승인 2016.04.07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포통장 근절대책 일환

규정 강화로 증빙서류 필요

주부·노인 등 불편 가중

민원 늘자 거래한도제 도입
직장인 A(35)씨는 7일 대구지역 모 은행에 통장을 만들러 갔다가 “금융거래 목적을 알려달라”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2~3년 전만해도 신분증만 있으면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지난해부터 계좌 개설 요건이 강화돼 ‘이유없이’ 통장을 만들 수 없었다.

이어 직원은 “직장인이면 재직증명서를 내는 편이 가장 간단하다”고 알려줬다. A씨의 경우 다행히 지난 2008년에 만든 기존 계좌가 있어 카드만 새로 발급받기로 했다.

A씨는 “통장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지 몰랐다”며 “옆 창구에서는 ‘왜 안 만들어주냐’고 실랑이를 벌이다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계좌 개설이 어려워진 이유는 ‘대포통장’ 때문이다. 주로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사용되는 대포통장은 개설자와 사용자가 다른 통장이다.

지난 2012년 금융감독원은 대포통장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계좌 개설 시 금융거래 목적 확인제도를 마련했다. 목적이 불명확한 경우 계좌 개설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은행들은 내부규정을 강화, 증빙서류가 있어야 신규 통장을 만들어주고 있다. 급여계좌면 재직증명서를, 아르바이트계좌라면 고용주의 사업자 등록증과 근로계약서를 제출하는 식이다.

최근 통장 만들기가 어려워진 상황을 빗대 ‘통장고시’라는 표현까지 생겨날 정도다. 실제 인터넷에 ‘통장 개설’을 검색하면 통장 만들기 성공·실패담과 함께 은행·지점마다 규정이 달라 비교적 쉽게 만들어주는 은행 지점 정보까지 공유하고 있다.

덕분에 매년 증가하던 대포통장 발생건수는 2014년 하반기 5만3천건에서 2015년 상반기 3만5천건, 하반기 2만2천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서류 등 소비자가 떠안아야 하는 불편도 상당하다.

특히 주부나 대학생, 노인 등은 해당 증빙이 어려워 통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5일 카드 재발급을 위해 은행을 방문한 B(30)씨는 한 할머니가 통장 개설 문제로 창구 직원을 1시간 가까이 붙잡고 있어 예상보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은행 직원이 증빙서류 등 규정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 했지만 할머니는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통장을 만들지 못하고 돌아가는 할머니를 보며 B씨는 “소득이 없거나 관련 서류를 내기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한편 민원이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거래한도를 제한한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방안을 뒤늦게 마련했다.

지난달 2일부터 시중은행 5곳은 ‘금융거래 한도계좌’ 제도를 도입, 은행별로 1인당 1개의 통장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하루에 이용가능한 금액은 은행 창구를 이용하면 100만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인터넷뱅킹 등을 이용하면 30만원이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