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린 대한민국 어머니 축제에서 ‘자랑스러운 어머니 대상’에서 대구신문 사장상을 수상한 강순이(57·북구 고성동3가)씨는 수상 직전까지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몰랐던 강순이씨.
하지만 그간 살아왔던 이야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눈시울부터 붉어졌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전남 진도에서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시집을 온 강씨는 남편 박주영(65)씨가 대구 북구 제3공단에 자동차부품 공장 문을 열었던 때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일을 관두고 퇴직금과 전세금을 모두 털어 자동차부품공장을 세우던 날. 부부는 부푼 꿈을 품고 자그마한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7살 난 아이를 공장 바닥에 재워놓고 날 새워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뜻대로만은 되지 않았다. 직원의 손이 프레스 기계에 끼여 절단되는 사고가 생기고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잇따랐고 결국 부도를 맞게 됐다.
첫 번째 부도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자동차부품공장을 세운 남편은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이번에는 보다 효율적으로 매출을 올렸다. 이번에는 IMF 외환위기가 문제였다. 사기꾼까지 만나 재기할 수 없을 만큼의 손해를 입고 파산신고를 했다. 두 번째 부도를 맞은 뒤 남편은 산에 올라가 나쁜 생각까지 했었다.
사업은 망했고, 남편은 일어서지 못했다. 두 자식을 먹여살려야 할 책임이 강순이씨에게 넘어왔다. 쌀을 살 돈이 없을 지경까지 오고 나니, 식당 서빙에 설거지, 공장 근로, 가정부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자고 싶은 것 못 자는 생활을 견디며 빚을 갚아나갔다. 남편도 다시 힘을 얻어 세 번째 사업을 일으켰다. 매출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에게 손 벌릴 만큼은 아니다.
“올해 안으로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을 다 정리할 것 같아요. 자식 2명도 결혼하고 대학도 졸업하고 어른이 다 됐죠. 이제 착실하게 살아간다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김정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