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 속엔 비밀정원이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엔 비밀정원이 있다
  • 황인옥
  • 승인 2016.06.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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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 개인展 28일까지 팔조갤러리

나무·꽃잎 등 자연적 소재 차용 풍경화

구상과 추상 넘나드는 독특한 화풍 뽐내

뉴욕 등 세계 미술계서 활발한 활동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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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의 개인전이 팔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나뭇잎과 꽃잎 등의 자연과 몽환적인 감성의 층위들이 화폭을 점령하고 있다. 안개 같기도 하고 눈꽃 같기도 한 물질들이 주제를 감싼다. 달빛 그윽한 밤 창호지 안에 비친 나뭇가지에서 제 무게에 겨워 떨어지는 눈의 진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개의 군무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는 듯도 하다. 심연의 고요, 태고의 신비가 감돈다. 화가 김상열의 ‘비밀의 정원’ 시리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해 어언 8년을 붙잡고 있는 ‘비밀의 정원’. 제목처럼 다분히 비밀스럽다. 자연을 그렸다고는 하나 재현을 위한 재현은 아니어서 구상 같기도 하고 추상같기도 하다. 여백이 주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든다. 자연의 재현이라는 주제에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엿보다가, 잎을 실제로 나뭇잎을 떠낸다는 점에서 판화적인 요소도 포착된다. 농익은 완숙미가 가득하다. “안개같은 아련함이 과거와 현재, 기억과 추억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다고 해요.”

김상열의 예술적 감각이 머무는 곳은 자연이다. 작업 초기에 물결의 파동에 추상성을 가미했다. 이후 좀 더 형상적인 나뭇잎이나 꽃잎 등 자연을 본격적으로 차용했다. 시각적 변화와 달리 일관된 흐름 하나는 견지했다. ‘마음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풍경화의 옷을 입은 마음화다. 최근 팔조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시작한 김상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이나 나뭇잎, 꽃잎 등의 자연을 통해 ‘마음의 파동’을 구체화한다”고 설명했다.

김상열은 천년 고도 경주가 고향이다. 김 작가는 역사의 깊이가 주는 묵직한 감성과 시골에서 만나는 자연의 지혜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성장했다.

그는 “자연이 아름다운 경주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이 ‘비밀의 정원’으로 승화됐다”며 고향과 감성과의 관계성을 꺼냈다.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이 되면 고만고만한 사촌들이 한 방에 누워 잔다. 그때 창호지너머의 댓잎이나 감나무의 그림자가 달빛을 타고 창호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을 봤다. 새벽녘에 문을 열면 물안개가 온 세상을 점령하려는 듯 피어오르는 모습도 삽화처럼 각인돼 있다.”

영국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은 어린 아들을 잃고 황폐해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동화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을 썼다. 순수한 스토리의 주제는 ‘희망의 속삭임’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동명소설을 차용해 ‘비밀의 정원’ 시리즈를 발표해온 화가 김상열의 주제도 ‘희망’이다. 비워내고 들어내는 여백 속에 채움에 대한 희망을 심는다.

두 작가는 주제 외에도 또 다른 유사성으로 묶여있다. 이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작품 이면에 치열한 내면을 자양분으로 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아들의 죽음을 작품의 동력으로 승화했다면 김상열은 ‘왜 그림은 규격화된 붓으로만 그려야 하고, 재현을 위한 재현에 매달려야 하나’ 등 일반화된 통념이나 신앙처럼 확고하게 굳어진 관념의 틀에 대한 의문을 작품의 동력으로 썼다.

‘왜’라는 의문으로 ‘뻔한 것’과의 이별을 시도했던 김상열의 전략은 ‘독자성’이다. 김상열은 작업초기부터 규격화된 붓을 버리고, 종이를 말거나 나뭇가지를 붓 대용으로 사용하며 ‘뻔함’을 버렸다. 기법 또한 재현을 위한 재현은 선을 그으며 평범함을 거부했다.

그의 캔버스 위에 촘촘한 천을 덧대 당기고 젯소를 수차례 올려 사포로 여러 번 갈아 창호지 같은 느낌의 표면을 만들고 검정색 물감을 입힌다. 빛을 찾아가듯이 흰색을 채워가며 형상과 여백을 동시에 드러내며, 동양의 정신과 깊이감을 담아낸다.

김상열의 독특함은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블로그,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을 통해 도전장을 던졌다.

지역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SNS를 적극 활용해 미술인, 건축가, 기자, 일반인 등과 소통하며 지역의 한계를 극복해 왔다. “당시 묵묵히 작업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했지만 작품판매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현실은 암울했다. 개인전을 열심히 준비했지만 언제나 그 결과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작가공모와 인터넷 매체 그리고 SNS를 활용하게 되면서 서울과 국외로까지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진출과 SNS 활동의 결실은 컸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의 2011-2012문학인과 예술인의 콜라보작업인 저작걸이 전, 2013 코리아 투마로우 전 등의 규모가 큰 기획전시와 서울에서의 초대개인전들이 이어졌다.

해외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리로이얼(LeRoyer) 갤러리와 뉴욕의 아트레드(Artered) 갤러리에서 상설전을 가졌다. 2014년부터는 세계12개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오페라갤러리, 2015년엔 이탈리아 밀라노의 가구회사인 Company SHSdesign사와의 콜라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해외 갤러리와의 전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김상열의 대구 전시는 팔조갤러리(경북 청도군 이서면 팔조길)에서 28일까지. 054-373-680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김상열은 영남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0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과 제1회 작가아트페어 최우수작가 수상, 2011 저작걸이 작가공모, 2003 서울문예진흥원지원 작가발국기획에 선정됐다. 현재 과천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뉴욕 아트레드 갤러리와 몬트리올 리노이열 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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