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 후 학생운동 가담
경찰에 끌려가는 선배 계기
현실 맞서 시위 적극 가담
강제징집 이후엔 노동운동
80년대 진보정당 당직자
진보정치연합 정책실장 역임
김부겸 의원과 첫 인연 맺어
가정 꾸리며 감정평가사의 길
특히 ‘대구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구에 김부겸 의원(수성구갑)과 함께 더민주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정기철(53·수성구을) 후보도 지역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내주며 대구의 변화에 일조,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주호영 의원과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와의 3자 대결 구도 속에서 두 자릿수인 17.7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양강 구도 속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은 데다 야당 간판, 첫 총선 출마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선전(善戰)을 펼쳤다. 김부겸 의원에 이어 대구 수성구 지역에서 4년 후 지역주의를 걷어내는 또 다른 이변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는 정기철 더민주 대구 수성구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겸 더민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을 만나 그동안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 및 포부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여당 텃밭이자 ‘대구의 정치 1번지’인 수성구에 무모한 도전장을 던지다
정 위원장은 “개인적 역량 부족으로 비록 당선되진 못했지만 20대 총선을 위해 준비부터 선거운동 등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다”며 “특히 많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지지와 격려 등 좋은 말을 많이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구 정치의 부활과 야당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뛰어든 지난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내심 야당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동안 우리 당이 지역에서 이들의 정치적 대변자 또는 대리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뼈 아픈 반성을 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김부겸으로 대표되는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룩한 만큼 시민들의 변화의 열망을 잘 담아내기 위해 중앙당은 물론 대구시당도 대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자책했다.
◇80년대 진보정당 당직자 출신 경력의 정치 ‘올드 루키’(중고 신인)
정기철 위원장이 총선 출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201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9대 총선 결과 전국 지형에서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이 새누리당의 상징인 빨간색으로 채색되는 것을 보고, ‘정말 대한민국이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현실 정치 참여를 결심했다. 때마침 자녀 학업 뒷바라지 등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된 것도 정치 입문 결심에 한 몫 했다. 그 해 가을 그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에 입당, 지역위원장 공모에 응하면서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이에 앞서 그해 지방선거에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부겸 의원의 요청으로 캠프 정책팀장을 맡아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입당 후에는 같은 해 겨울 당시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 지원에도 나섰다. ‘문재인 시민캠프’ 대구지역 공동대표를 맡아 대구 전역을 돌아다니며 문 전 대표의 지지 연설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때쯤 그는 20대 총선 출마의 뜻을 세우고 소속돼 있던 파트너십 감정평가 법인을 나와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등 주변 정리를 하며 차근차근 출마 준비를 한 뒤 결국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같은 이력만 놓고 보면 정 위원장은 정치 신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는 꽤 오래전 현실 정치에 몸담았던 정치계 ‘올드 루키’(중고 신인)다. 정 위원장은 20대 초반부터 학생 및 노동운동을 하다 1987~1988년 민중운동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진보정당인 ‘민중의당’과 같은 시기 한겨레민주당 및 민중정당재건추진위원회 두 당이 통합해 만들어진 ‘진보정치연합’에서 각각 정책실장과 민생민권국장 등을 역임했다. 또 그는 당시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故) 제정구 의원과 제 의원이 이끌었던 한겨레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김부겸 의원과 처음 인연을 맺으며 친분을 이어나갔다. 이보다 앞서 1987년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기완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선거 참모를 지냈다. 특히 그는 백기완 후보를 민중후보로 추대하는 데 실질적인 주도 역할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운동권 선배들과 함께 대선에 민중후보 추대의 뜻을 모은 뒤 백기완 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설득, 수락을 이끌어냈다. 또 민중후보 추대 결의대회 개최 등 관련 실무를 맡는 등 일찌감치 민중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쌓은 중고 신인이다.
정 위원장은 “젊은 시절 나름 치열하게 노동·진보 정치운동을 하다 한참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오던 중 19대 총선 결과를 보고 ‘정말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정치에 입문했다”며 “특히 최근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의 교훈을 통해 일당 독식의 폐해를 끊을 수 있는 대구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하게 든 만큼 앞으로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는 대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된 젊은 날 노동·진보운동의 삶, 그리고 평범한 생활인의 삶
하지만 정 위원장은 1989년 고(故) 제정구 의원의 주례로 현재의 아내와 결혼, 이듬해 첫째가 태어나면서 분유값 등 경제적 어려움 등에 직면하자 평범한 생활인의 삶을 살기로 했다. 학창 시절 참고서를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자란 자신처럼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6·29 이후 민중세력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졌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사회적 문제 제기에 앞서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0년 진보정치연합 조직에서 탈퇴, 1년간 공부를 거쳐 이듬해 치러진 제2회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 1992년 한국감정원에 입사해 감정평가사의 길을 걸었다. 또 1993년 YS 정부가 복교 허용 조치를 발표하자 노동운동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마치기 위해 그해 서울대에 복학, 1996년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이와 함께 1995년 감정원 퇴사와 함께 대구로 내려와 현재까지 살고 있는 범물동에 둥지를 틀며 수성구을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아울러 정 위원장은 대구에서 감정평가사로 경제적 활동과 함께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 경신고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생활인으로서 시민단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등 지역 사회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정 위원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에서 소련의 붕괴 및 독일의 통일 등 동유럽의 변화를 보면서 느꼈던 이념적 혼란 등으로 나름 치열하게 투신했던 노동·진보운동의 삶을 끝내고 평범한 생활인의 삶을 살게 됐다”며 “감정평가사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부동산과 관련한 전문적 역량을 발휘, 많은 국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앞으로의 정치적 계획과 포부
정 위원장의 정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21대 총선에도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다. 하지만 차기 총선에서 낙선할 경우 더 이상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방침이다. 다만, 낙선하더라도 정치적 활동은 이어나간다는 구상이다. 더민주가 대구에서 좀 더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기 위해 자생적인 정치 자원 육성에 힘을 쏟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또 야당의 활발한 정당 활동 등을 통한 지역주의 극복의 싹을 틔우는 것에도 많은 역할을 하겠다는 목표도 숨기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민주 대구시당과 지역위원회가 좀 더 적극적인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 위원장은 “이번에 새롭게 구성될 대구시당 및 지역위원회는 지역에 대한 열의를 바탕으로 진정 시민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노력에 충실해야 한다”며 “이 같은 노력을 통해 당의 외연을 확장시킴과 동시에 대구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더민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정치 철학 및 21대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펼치고 싶은 정치적 방향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정 위원장은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최대한 고르게 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결국 불평등의 완화를 통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줘 이 기울기를 완화시키는 것이 국가 권력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가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것은 목표하고 있는 정치 실현의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며 “개인적 전문성을 살려 우리 경제를 해치는 악의 원흉인 불합리한 부동산 제도를 고치고, 버블을 걷어낼 수 있는 토지정책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정치는 국가 권력이 앞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그 방향타를 잡아줌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침과 동시에 시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정치적 대변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무진기자 jin@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