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문경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
<와이드인터뷰> 문경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
  • 승인 2010.02.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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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검 만들기에 일생 바쳐"
단절된 전통칼 제작 기술, 관련분야서 스스로 습득
21일 새벽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한 폐교에서 전통검 제작자인 이상선(57) 씨가 '왕의 검'으로 전해지는 사인검(四寅劍)을 만들고 있다.
“열여섯살 때 영친왕 제사에 갔다가 처음 사인검을 보고서 미쳤었지요. 그 곳에 세워놓은 칼을 보고 만들어서 갖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사인검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임금이 갖고 있던 칼이란 사실만 알았었지만..”

경북 문경에서 고려왕검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상선(57) 소장은 전통 칼을 만드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

호랑이해(寅年) 호랑이달(寅月) 호랑이날(寅日) 호랑이시(寅時)를 맞아 21일 사인검(四寅劍)을 만든 그는 오래전부터 임금의 칼이라는 사인검에 관심을 둬왔다.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18대손으로 조선왕실의 자손이란 점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일찍 사인검을 접했지만 왕실의 자손이란 점이 또한 칼을 만들고 싶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만 해도 대장간 일이라고 하면 천하다고 했거든요. 칼 만들겠다며 그들과 어울렸으니 집안에서 좋아했겠습니까?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그쪽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어요.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면 혹시 고향으로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17세 때 은장도 만드는 기술자한테 칼 만드는 기술을 배운 그는 지금까지 전통칼 제작에 정열을 쏟았다.

문제는 일제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국내에 전통칼 제작 기술이 단절됐다는 점. 이 때문에 그는 대장간에서 칼을 벼리는 법과 목공소에서 목제 칼집을 만드는 법을 습득했고, 함석집에서 칼 장식을 만드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제각기 전통칼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됐지만 전체적으로 전통칼 제작을 가르쳐 준 스승은 없는 셈이다.

그는 “지금 국내에 일본식 칼이 많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지침서도 없고 역사도 단절됐으니 그걸 나무랄 수만은 없다”며 “나는 박물관에 가서 전통검 형태를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칼 만드는 기술을 습득한 그였지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렸다. 도검을 만들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쉽게 나오지 않은 것.

3년을 기다려 마침내 1990년 당시 내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은 그는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쌀이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을 정도로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지만 그는 칼 만드는 일이 행복했다.

“아내가 다른 일 하자면서 참 많이도 바가지를 긁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그 소리도 안 들리더라고. 검에 미치다 보니 아내도 졌지요.”

인천에서 칼을 만들던 그는 2000년 문경의 폐교를 임차하면서 문경으로 와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이제는 진검을 사용하는 검도장이나 칼을 소장하려는 사람이 꾸준히 늘면서 그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던 시기는 벗어났다.

수년 전 관객 1천만명 이상을 끌어모았던 영화 ‘왕의 남자’에도 그가 만든 칼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했고, 2007년에는 노동부로부터 야철도검부문 기능전승자로도 선정되는 등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칼은 그냥 두면 상한다”며 “곁에 두고 꾸준히 닦으면 마음도 닦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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