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생각하는 백선엽 장지 논란
6월에 생각하는 백선엽 장지 논란
  • 승인 2020.06.0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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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호 대구광역시달서구사회복지협의회장·월성종합사회복지관장
하종호 달서구사회복지협의회장·월성종합사회복지관장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사후 안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선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6.25의 이순신으로, 또 다른 한편에선 일제강점기 만주군 경력을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는다. 현충원 안장 논란은 급기야 ‘파묘 운운’하는 참담한 말까지 오가면서 또 하나의 진영싸움, 역사전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와중에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특혜 없이 규정대로 대전현충원에 묻히기를 바란다고 뜻을 밝혔다.

6.25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의 분투가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을지 모른다. 거듭된 패전에 항전의지조차 꺾여버린 국군. 흩어진 전열과 무너진 전선. 여기에 실망한 미군조차 포기하려했던 대구 방어선이다. 부산, 마산방면 후퇴선을 준비하던 때다. 이를 ‘사단장 돌격’이라는 전설의 독전으로 일거에 반전시킨 이가 백선엽 장군이다.

이 전투로 국군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고 반격의 단초를 만들었다. 열패감에 젖어있던 국군은 자신감을 되찾았고 미군도 국군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지켜낸 방어선에서 반격은 시작됐다.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 수도 서울을 되찾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아 지금의 번영을 이루었다. 6.25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의 한 장면이다. 그 중심에 백선엽이 있었다.

사람은 지구의 생명체 중에서 수명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사람을 둘러싼 생존환경도 각양각색이고 시시각각 달라진다. 이런 가운데 그 어느 누구가 평생을 살면서 한가지 모습만으로 살아질 수 있을까? 유년기와 소년기의 성장이 다르고, 청년기와 중장년기의 삶이 다 다르다. 한번 만들어진 성정은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이고 한번 다진 결기는 변함이 없을까? 태어나서 삶을 다할 때까지 고귀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바람과 달리 살다보면 훼절도 있고 그 훼절의 반전도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미 ‘친일’의 문제는 진영논리의 키워드가 된지 오래다. 친일파는 친일의 댓가로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리며 호의호식해 왔으며, 그 후손들조차 기득권의 대물림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세력이 해방공간에서는 미군정을 등에 업은 친미세력으로, 6.25전쟁과 그 이후에는 반공냉전세력으로 얼굴을 바꾸어 가면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한 친일의 잔재가 근대화과정에서 독재정권과 결탁하면서 권력과 부를 대대로 독점해온 부패와 적폐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 이 진영의 역사인식이다. 따라서 친일청산, 그것도 밑도 끝도 없는 ‘진정한’을 갖다 붙인 ‘진정한 친일청산’ 만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구조에 백선엽 100년의 삶을 대입해보면 얼핏 보기에 친일세력의 전형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 100년, 이를 벗어난 지도 7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봉건왕조국가에서 제국주의 식민지로, 외국군대의 영토분할과 점령통치를 거친 후에는 참혹한 전쟁을 치렀다. 정치권력을 국민봉기로 몰아낸 경험도 있고 군부세력의 힘에 독재권력을 허용했던 적도 있다. 그 와중에도 근대화와 산업화는 멈추지 않았고 빛나는 성과도 거두었다. 국민주권이 위협받을 때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세계의 근대국가들이 겪은 봉건세력의 몰락과 산업사회의 등장,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과 반동, 전쟁과 대치의 역사를 우리도 똑같이 경험했다. 다르다면 서양세계가 300년 걸린 대사변을 우리는 100년에 겪었다는 것이다.

대사변을 거칠 때마다 역사의 주도세력은 부침을 거듭한다. 봉건국가가 몰락하면 체제의 주류도 몰락하게 되어있고 제국주의가 사라지면 그 세력의 주류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세력의 일부는 대사변의 뒤에도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세력은 아니다. 바뀐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는 그 시대에 유용한 개인일 뿐이다. 백선엽의 6.25를 친일군인의 행적이 아닌 대한민국 국군의 행적으로 보아야하는 이유다.

노장군의 반민족친일행적을 역성들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친일행적 하나로 그의 모든 삶을 폄훼하는데도 동의할 수 없다. 100년의 세월 속에 공도 있고 과도 있을 것이다. 그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청년기 반민족행위에 대해 회한의 심경을 나타낸 적 있다. 격동의 시기 어느 장면 하나만 가지고 집요하게 낙인찍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 역사가 일제의 식민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도 이제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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