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행운은 기다리는 것이다?
<팔공시론> 행운은 기다리는 것이다?
  • 승인 2010.07.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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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 티케(Tyche, 로마신화의 Fortuna)가 헬레니즘 시대의 머리에는 도시성벽 모양의 왕관을 쓰고, 인생의 네 단계 고비마다 운명을 좌우하는 수레바퀴위에 올라탄 눈 먼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든, 중세시대 풍요의 염소 뿔을 들고, 인생을 상징하는 배의 조타장치인 수레바퀴를 손에 든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앞머리는 길지만 뒤가 벗겨지고, 눈은 장님이고,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한쪽 발은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올려놓고 또 한쪽 발은 공중에 띄워 놓고 달려가는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든, 그녀는 분명 우리를 애타게 하고 놀라게 하며 기쁘게 하는 여신인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장님이기 때문에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다.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찾아 가도 늦게 간다. 등에 날개가 있기 때문에 따라가려고 하면 금방 날아가 버린다. 그런가 하면 머리 뒤가 벗겨져 있기 때문에 잡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변덕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운명의 여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오고, 도망가도 쫓아오고, 빨리 오지는 않지만 반드시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그녀를 쫓아다녀야 하나? 아니면 기다려야 하나? 또 아니면 아애 잊어버려야 하나?

욕망에 가득차서 어리석고 한심하게 보이는 무리들은 그녀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저 사람은 양배추를 키우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는 교황이 되었다. 우리가 그 사람보다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물론 그들이 백배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치는 어디에 쓸 것인가? 행운의 여신이자 운명의 여신인 그녀는 장님이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가 없다. 게다가 교황이란 자리가 옛날에는 신들이나 누렸던 귀한 휴식을, 그 보물 같은 휴식을 포기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거의 휴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녀를 먼저 찾지 마라. 먼저 찾지 않아도, 대개의 여자들처럼 그녀가 먼저 찾아올 것이다. 풍족한 마을에 재산이 넉넉한 두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끊임없이 행운을 쫓아 다녔다. 하루는 그가 다른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를 떠나는 게 어때? 누구나 자기 고향에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잖아? 다른 곳에서 행운을 찾아보자.” “자네나 찾아보게. 나는 더 좋은 환경이나 운명 같은 것은 바라지 않으니까. 자네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나. 나는 자네를 기다리며 그 동안 잠이나 자겠네.”

야심에 찬 친구는 여신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그는 여신이 친하게 지낼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갔다. 그곳은 왕궁이었다. 국왕 주변에 한동안 머무르며 온갖 좋은 시간에 온갖 좋은 장소에 가보았지만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행운이 따르는 것 같은데, 왜 자신만 찾아주지 않는지 그녀의 변덕에 화가 날 따름이었다. 그 때 누군가 회교경전에 따르면 어떤 사원에 행운의 여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찾아 또 다시 길을 나섰다. 강을 지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사원으로 가는 도중 도둑, 해적, 풍랑, 고독과 더불어 곳곳에서 암초 같은 죽음의 사신들도 만났다. 그러나 사원 어느 곳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몽고라는 나라로 향했다. 행운의 여신은 당연히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지 않겠지. 그런데 몽고에서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행운의 여신이 사람들에게 은총을 나누어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제야 하고 일본으로 달렸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다도 어떨 때는 잔잔했지만, 어떨 때는 여신의 마음만큼 변덕스러웠다.

그는 마침내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 야만인들과 자연이 준 단순하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다. “집을 떠나지 마라.” 일본은 아라비아나 몽고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어떤 행운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토록 찾기 힘들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집을 떠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도 쉽지 않았기에, 멀리서 자신의 집을 발견한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기약도 없이 세상 끝으로 자신을 몰아내고 존엄성과 재산을 버리게 한 행운의 여신에 대해 말했다.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자신의 집에서 사는 사람은 행복한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자신을 기다리며 잠에 빠져있는 친구의 집 앞에서 행운의 여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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