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칼럼>제2의 투쟁에 나선 이재오
<대기자 칼럼>제2의 투쟁에 나선 이재오
  • 승인 2010.07.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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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대기자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재오는 제2인자로 불려졌다. 이명박의 대통령당선을 위해서 온갖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어디 이재오 한 사람뿐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당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 선거대책본부의 지도부에 이름 올린 사람. 재야단체를 이끌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람 등등 창업공신은 지천에 깔렸다.

하고많은 그 사람 중에서 군계일학의 각광을 받은 사람이 이재오다.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제2인자라는 실력자가 된 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무슨 일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저돌성을 첫째로 꼽을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필자는 이삼십 대의 젊은 시절 그와 함께 민주청년협의회라는 재야청년단체를 조직하여 군사독제정권에 대항하다가 수많은 고초를 겪은바 있다. 나는 4.19혁명세대이고 그는 6.3운동세대로 선후배의 간격은 있었지만 문제를 바로보고 즉각 실천에 옮기는 행동력은 언제나 그가 앞섰다.

그는 선배들의 신중론에 정면으로 맞서 강경론을 폈다. 당시 공화당정권은 김종필 세력을 제거하는 3선 개헌으로 정구영, 예춘호, 양순직, 박종태, 김달수 등 중진의원들이 제명되거나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민주화운동이나 인권문제는 철저히 탄압할 시절이었다.

이로 인하여 당시 민주청년협의회에서 매일처럼 만나 난상토론을 벌이고 투쟁을 모색하던 동지들 중에서는 이재오를 비롯하여 박정훈, 오대영, 전대열 등이 단골처럼 중앙정보부와 경찰에 잡혀가 곤욕을 치렀다

젊고 팔팔했던 `민정협’외 멤버에는 4.19와 6.3운동의 주역과 각 대학의 지도적인 학생운동자들이 모두 모여 어는 단체도 따라오기 힘든 도덕성과 투쟁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정정봉, 김도현, 현승일, 최동린, 김승균, 기노을, 박상덕, 이인조, 이철우, 김영일, 배춘실, 유영희, 이부영, 박범진, 김지하, 조풍삼 등등 지금까지도 활발히 움직이는 동지들이 많다. 박기완은 멤버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항상 만나서 밤새워 토론을 벌렸다.

민청협 사무실은 지금 현대사옥이 자리 잡고 있는 계동의 조그마한 2층이었다. 당시 신민당 수석부총재로 있는 양일동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정화암선생과 함께 아나키스트 운동에 몸담은 바 있는데 그 때의 동료들을 위해서 민주사회주의연구회라는 조직을 운용했다.

황빈 등 가난하지만 뜻이 높은 옛 동지들을 위한 양일동의 배려가 컸지만 민주사회주의연구회 역시 소위 혁신계라는 이름으로 5.16쿠데타 이후 호된 시련을 겪은 처지여서 사무실은 언제나 비어 있다시피 했다. 이 사무실을 이철우의 교섭으로 민청협에서 쓰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일을 마친 다음에는 어김없이 매일 저녁 이사무실에 출근하여 각자 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에 들어갔다. 나는 사무장을 맡아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주머니를 털어 소주 한 잔을 챙겨야 했고 어떤 문제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지나치다 보면 책상을 둘러엎는 등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대부분 친구요 동료였기 때문에 칼로 물 밴 듯 그 이튿날이면 또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눴다. 그 흔해 빠진 화투나 장기, 바둑은 아예 범접도 못했다. 이재오는 사실상 막내였지만 사안에 대한 토론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만큼 소신이 뚜렷했고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초 강경자에 속하면서도 고려대 대학원에 다녔다. 그가 나중에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전공인 국어를 가르치고 연구 활동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한번 알게 된 것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성격 탓이다. 그는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온갖 죄목을 뒤집어쓰고 감옥살이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와 감옥에서 만나 것만도 두 차례니 그의 간난산고는 이루 다 말하기도 어렵다. 다행히 국회의원 3선을 역임하며 박근혜대표 체제하에서 원내 대표로서 깍듯한 예우를 갖췄던 일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랬던 그가 18대 총선에서 뜻밖에 낙선을 하고 권익위원장으로서 공무원 부패척결에 앞장섰다가 은평을 재선거에 나섰다.

이명박정부의 제2인자라는 타평(他評)이 그에게 큰 부담이 되어 낙선의 고배를 마섰지만 이번에는 권토중래할 것인지 세상의 관심사다. 민주당에는 손학규, 김근태, 한광옥 등의 이름이 나오다가. 장상, 윤덕홍의 경합으로 결판날 듯하다. 그 외에도 고연호, 송이화, 최창환, 이계안 등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민노당 이상규, 국민참여당 천호선이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무효로 의원직을 잃은 항조한국당도 후임을 낼 예정이어서 야 4당의 후보단일화 문제는 더욱 관심을 끈다. 텃밭주인 이재오의 대항마가 누가 되던지 간에 은평을 재선거는 7.28재보궐선거구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혼자 외롭게 뛰겠다는 이재오의 결심이 자칫 젊을 때의 그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재오의 제2기 투쟁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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