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1
사냥 1
  • 승인 2022.02.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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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겨울, 꽁꽁 언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동네 어른들은 꿩사냥을 하러 산에 간다. 올가미를 만들고, 마을사람이 갖고 있는 엽총을 준비해서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른다.

어른들과 함께 사냥을 가 본 적은 없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는지는 모른다. 다만, 농사철에 보지 못한 활력이 어른들을 생동감있게 했다. 40, 50이 된 나이임에도 30대의 젊음이 느껴지는 활기를 온 몸으로 풍긴다. 아버지도 그랬다. 20대때 동네 친구들과 사진관에서 찍은 흑백 사진속의 환한 웃음을 딸에게 보여 주었다. 이빨이 보이도록 크게 입이 옆으로 쭉 늘어난 웃음은 행복하다는 표시였다. 그런 아버지의 웃음이 홍희는 좋았다. 그런 웃음을 웃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웃어서 좋았다. 아버지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웃을 때가 제일 좋았다.

아버지는 밤이 되어 돌아왔다. 한 손에는 축 늘어진 꿩 한마리를 들고 왔다. 씩~웃음을 지으며 마당에서 부엌으로 들어서는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어둠속에서 전등불아래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어둠이 따뜻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농사철에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농사철에는 표정이 없었다. 찡그리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은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농사가 헤어날 수 없는 자기의 숙명인 것처럼 농부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그저 하루하루 일을 해내야하는 것처럼 보였다. 좀 더 배워서 좀 더 그럴듯한 자기의 일을 하고 싶기도 했었을 아버지의 젊은 날의 방황과 절망이 농사철에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로서 책임감이 자식을 위해서 농사를 지어 학비를 대고,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는 약한 몸이지만 논으로 밭으로 하루종일 몸을 끌고 가야만 했다. 가끔은 그 몸이 너무 힘에 겨워서 피곤해지는 몸이 짜증나서 소에게 이랴 소리를 지르고, 술 한 잔에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싹 달아나버리게 만드는 아버지의 미소가 홍희와 엄마를 행복하게 했다. 엄마는 그 어느때 보다도 환한 웃음으로 아버지를 반기며 다가가 손에 든 꿩을 건네 받는다. 엄마 역시 얼굴에서 밝음이 화살처럼 번져 나갔다. 작은 꿩 한 마리가 농촌의 일상에는 특별한 손님이었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든 농사를 짓던 부부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요즘의 외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 때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일상적이지 않은 그 날이 외식이었다.

꿩은 닭처럼 요리를 해서 먹었다. 엄마는 음식재료인 꿩을 다루었고, 냄비에 끓여 내왔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없었다고 늘 기억하는데, 그 날은 맛있었다. 닭다리마냥 쫄깃쫄깃했다. 국물도 담백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가 잡아 온 꿩고기는 홍희의 입에 따뜻한 포만감을 주었다. 엄마의 음식솜씨는 재료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은 재료와 여러가지 양념을 듬뿍 써서 만든 음식과 김치는 맛있었다. 재료가 좋으면 간만 잘 맞으면 맛있다는 말이 있다. 엄마의 음식솜씨는 재료탓이었다. 지금은 산에 가서 잡으면 안 되는 세상이지만, 그 때는 그랬다. 특히나 농촌에서는 자연에서 저절로 자라는 것은 다 채취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홍희는 봄을 좋아한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대지가 녹아 흙이 폭신폭신한 계절인 봄이다. 도랑에 얼었던 얼음이 반쯤 녹아 얼음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는 경쾌하다. 눈과 귀와 피부가 봄을 맞이할 때 굳어 있던 온 몸이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다.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즐겁고 풍요로운 기억은 겨울에 있었다. 바람은 차갑고, 대지는 얼었고, 논과 밭은 텅 빈 겨울이 오히려 홍희에게 따뜻하고 풍요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집 안에는 논과 밭에서 거둬 들인 곡식들로 가득찼다. 쌀이며 콩이며 고추며 창고방에 빼곡이 쌓여있었다. 고구마는 잠을 자는 따뜻한 방 윗목에 옷을 덮고 있었고, 그 옆에는 콩나물 시루가 노란 머리를 내밀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매일 새벽에 나가 해질 녁 들어오시던 엄마와 아버지는 아랫방과 부엌에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희에게 어린 날의 겨울은 상실의 계절 아니라 풍요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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