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콩나물
[달구벌아침] 콩나물
  • 승인 2022.03.02 18: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는 비슷한 풍경이 하나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불을 뒤집어쓴 콩나물시루의 뒷모습이다.
지금은 대량 생산으로 공장에서 콩나물을 키우고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지만, 옛날 어릴 적에는 여느 집 할 것 없이 방에서 콩나물을 키웠다. 이불이나 보자기 같은 것을 덮어씌워서 햇볕이 드는 것을 차단하고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콩나물시루. 마치 그 모습은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는 수도승의 모습 같아서 위엄 있어 보였다. 당시 키 작은 꼬마가 보기에는 꽤 키가 큰 어른이 앉아 있는 듯해서 밖에서 놀다가 뒷방으로 들어가면 한 번씩 놀랄 때도 있었다. 상상력이 많은 나로서는 이불을 열어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 아님을 확인한 후 서비스로 물 몇 바가지 퍼 주면 콩나물은 '휴~이제 살았네'라고 하며 안도와 고마움이 섞인 한숨을 내 쉬는 듯했다.
다시 그 시절이 그리워진 모양이다. 창고에 들어있던 옹기로 만든 콩나물시루를 찾아 먼지를 털고, 물로 깨끗이 씻어 주었다. 콩나물시루가 고맙다는 듯 '삥긋' 웃는다. 마트로 달려가 서리태 한 되를 샀다. 경험상 콩나물은 머리가 작은 쥐눈이콩이 좋은데 아쉽게도 쥐눈이콩이 없어서 머리가 큰 서리태를 사 와서 콩나물 직접 키우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콩나물을 몇 번 직접 키우면서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까워 여러분과 나눠보려 한다.
첫 번째 깨달음. "잘 골라내자" 콩나물 키우기 첫 번째 할 일은 콩을 씻고 죽은 콩을 골라내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죽은 콩을 살아있는 콩과 함께 넣어서 키우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콩이 썩게 된다. 죽은 콩은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키우다 보면 다른 콩나물에도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미리 잘 골라내야 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내 주위에 썩은 콩과 같이 생명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내 삶 속에서 미리 골라내는 것이 좋다. 힘 빼는 사람, 늘 다툼을 달고 사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 등을 골라낼 필요가 있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얼마나 많나? 웃는 날보다 슬픈 일이 더 많지 않던가? 안 그래도 괴로운 여정인데 그런 사람과 동행하면 더 힘 빠지게 된다. 그들은 마치 열정의 피를 빨아먹는 '열정 뱀파이어'와 같다.
두 번째 깨달음. "반드시 충분한 준비의 시간을 가지자." 썩을 콩을 골라내었다면 다음 단계는 콩을 불리는 일이다. 콩이 있다고 바로 콩나물시루에 넣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콩 불리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듯 우리도 어떤 일을 하기 전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달리기로 비유하자면 달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달리기에 맞는 신발로 갈아 신고, 또한 신발 끈을 묶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 깨달음. "믿고 기다리자, 그리고 계속하자" 콩나물시루는 밑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래서 위에서 물을 부으면 아래로 모두 흘러내린다. 그런데 신기하게 콩나물은 자란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할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던 일을 포기한 적이 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믿고 기다려 주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해서 부어줄 필요도 있다. 특히 운동, 공부, 사람에 대한 믿음 등이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야 결실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네 번째 깨달음, "흘려 버릴 것은 흘려 버리자." 콩나물이 크기 위해서는 물을 아래로 흘려 버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물이 빠지지 않고 독 안에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채 그 상태로 오랜 날을 계속 있게 되면 언젠가는 콩이 썩어버릴지 모른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받았던 아픈 상처, 좋지 않은 기억 등은 너무 오래 가지고 있으면 우리를 병들게 된다. 그래서 흘려 버려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흘려 버리고, 다시 또 흘려 버려야 한다.
다섯 번째 깨달음, "혼자의 시간을 가지자." 물을 주고 나면 마지막으로는 콩나물시루 안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무언가를 덮어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몇 시간을 가만히 놔두어야 한다. 그래야 콩나물이 잘 자란다. 우리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용한 곳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은 고요함 가운데 자신과 만날 때, 그때 성장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