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감나무가 서 있던 자리
[달구벌아침] 감나무가 서 있던 자리
  • 승인 2022.07.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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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우리 집 바닥은 아랫집 천장입니다.’

이웃에게 전하는 따뜻한 한마디 “안녕하세요!”

아파트 단지 입구를 막 들어서려는데 불볕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서 있는 플래카드의 글귀가 두 눈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을 타 폭염이 기세등등하다. 젖은 옷가지들은 빨랫줄에 널어놓기가 무섭게 이내 말라 버린다. 화단에 심어진 꽃과 나무, 온갖 잡풀들이 애타는 목마름으로 시들어 가고 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밑동만 남은 감나무 한 그루가 한 생을 마감한 채 들앉아 있다. 바로 옆자리, 푸르고 토실토실하게 여물어가고 있는 단감나무의 감들을 올려다보며…. 새들과 온갖 벌레들 그리고 길고양이들의 놀이터이자 쉼터로 남아있다.

얼마 전, 아침 댓바람부터 딸내미의 다급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엄마, 위층에 사는 아저씨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어.”

위층에 매달린 아저씨의 두 다리가 딸내미 집 베란다 아래로 감나무 가지에 감이 매달리듯 늘어져 있다고 한다. 덜컹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잠재운 채 황급히 119에 신고해 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소방차가 달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기톱의 날을 세워 화단에 서 있는 나무를 베어내는 일이었다. 14층의 높이에서 만약 뛰어내리기라도 한다면 손쓸 틈 없이 바로 기름통에 꽂힌 핫도그처럼 나무에 꽂혀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건을 던지며 싸우는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위층에서 들려오는 잦은 다툼 소리에 딸내미는 몇 번이고 ‘조용히 좀 해 달라’며 부탁했지만 매번, 그때뿐이었다는 것이다. 어젯밤엔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다른 날에 비해 더욱 소란해 ‘저러다 무슨 큰일이라도 치르고 말지’라며 내심 걱정이 들었는데 결국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사를 할 수도 없고 어찌 대처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차에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며 후회하는 눈치다.

누군가의 주검을 목격한다는 건 가깝고 먼 관계를 떠나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딸내미의 빠른 신고와 대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바로 아래층에 사는 이웃이란 이유를 갖다 댄다면 더더욱 깊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로 인해 죽겠다고 매달린 그는 뛰어내리지 못하고 살아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감나무는 태어난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던 흔적만 남기고 영원히 저 먼 별나라로 떠나고 만 셈이다. 매달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날을 코앞에 둔 채.

지금 내가 선 바닥은 누군가의 천정이고 그 천정은 또 누군가의 바닥일지도 모른다. 삶이 그렇듯 바닥만 있지 않고 천정만 있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공전하듯 바닥과 천장이 서로 맞물려 흘러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그 후, 딸내미 집을 오갈 때마다 그루터기만 남은 감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멈춰선 채 바라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간혹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이다. 죽지 못해 살고 죽기 위해 죽어라 살아가는 게 또한 삶이 아니던가. 가만히 흐르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것을 죽으려고 애쓸 것까지야 뭐 있을까.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는 날까지. 못나고 어설픈 말과 행동으로 인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층간소음은 아파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주택에도 있다. 그가 사는 집 화장실은 내가 사는 집 안방과 맞물려 있다. 그 집의 등은 내 집의 얼굴인 셈이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화장실 세면대를 기둥처럼 붙들고 선 채 집채만 한 고래가 수면위로 잠시 올라와 숨 고르기 하듯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새벽과 한밤중 역시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도 때도 없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포탄 훌뿌리는 소리 같다.

“내 좀 살자. 숨 좀 쉬자. 제발, 누가 날 좀 죽여도”/ 사위가 고요한 날은 오히려 걱정부터 앞선다. 슬픔이 번진다. ‘홀로 먼 길 떠나셨나?’ 해서. 단 한 번도 ‘괜찮아요?’ 따뜻한 말 한마디 물어 봐주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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