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글자인 듯 그림인 듯…中·日엔 없는 독창적 민중예술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글자인 듯 그림인 듯…中·日엔 없는 독창적 민중예술
  • 윤덕우
  • 승인 2022.11.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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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행복 바라던 마음 안고
병풍에 장수 ‘壽’ 행복 ‘福’ 배치
초기에 큰 글자 ‘壽’안에
다양한 서체의 ‘壽’ 채워넣다
후일 ‘福’ 더해지며 壽·福 반복
같은 글자라도 서체·도안 변화
다양한 색의 실로 자수 놓기도

요즘은 사건 사고가 많아서 세상살이가 뒤숭숭하다. 한해의 결실을 맺기 위해 전시회도 많고 성과 발표회도 많았다. 일이 많아 필자의 직업이 농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처럼 일한다.”며 푸념을 늘어지게 해 본다. 언제쯤 여유롭게 쉬엄쉬엄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런지…. 이번 주 칼럼을 준비하면서 복잡한 일상과 일상이 전쟁 같은 사건과 사고 속에 고요하게 평온하게 일상을 지내고 싶은 열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형록-백수백복도
<그림1> 이형록(李亨綠) 작 백수백복도 (白壽百福圖)10폭 병풍 직조비단위의 채색 각 184×48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조선후기 책가도 화가로 잘 알려진 송석 이형록(松石 李亨綠 1808~?)의 작품으로 알려진 백수백복도이다.

백수백복도는 장수와 행복을 각각 의미하는 수(壽)와 복(福) 자를 화면에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1610년(광해군 2)에 명나라의 장수 유정이 가지고 있던 백수도(百壽圖)를 전라남도 나주 남평 현감인 조유한(趙維韓 1588~1613)에게 선물한 것을 광해군에게 진상했다는 것이 첫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백수도(百壽圖)는 ‘수’자를 크게 쓰고, 음획(陰劃)으로 된 글자 가운데 ‘수’자가 수백 자 쓰여 있었으며, 서체는 과두(과두)·전(篆)·주(주)·충(蟲)·학(鶴)·구인(구蚓) 등 여러 체였다고 묘사되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초기의 백수도는 큰 글씨 안에 다양한 체의 글씨를 채워 넣는 모양이었고, 후에 복자(福字)가 더해지면서 한 글자 또는 두 글자를 번갈아 쓰는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를 주제로 많은 수의 병풍이 제작되었다. 화면에 글자를 배치할 때 같은 글자라도 서체와 도안을 다르게 하여 글자의 형태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먹으로 도안만을 구성하거나 색을 달리하여 채색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색 실을 사용하여 자수로 만들기도 하였다.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뜻에서 제작된 백수백복도는 대개 8폭 이상으로 제작되며 조선후기 이래로 궁중에서 장엄용이나 가례에 사용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민간에도 전래되어 회혼례(回婚禮)등에 사용되었다.

이형록의 백수백도 병풍은 한 폭에는 ‘수(壽)’자를, 그 다음 폭에는 ‘복(福)’자를 번갈아가며 총 ‘수’자와 ‘복’자를 100개 씩 그린 작품이다. 제 8폭까지는 매 폭마다 21자씩, 그리고 마지막 9폭과 10폭에는 16자씩 그렸다. 전서(篆書)를 비롯해서 각종 문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렸지만 반복되는 글자체나 문양이 없다. 제8폭과 9폭에는 이형록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있어서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이 작품의 정확한 출처를 알 길은 없으나 도화서 화원이었던 이형록의 작품이라는 점과 작품의 규모, 화격 등을 통해서 궁중에서 제작해서 사용했던 백수백복도의 양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바탕은 문양이 직조되어 있는 비단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짠 일반적인 화견(畵絹)과는 다르다. 매 폭마다 색상도 달리하여 염색되어 매우 화려하고 수준 높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이러한 수복문자도(壽福文字圖)는 한국만의 독특한 민중 예술의 장르로서, 한자문화권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을 갖고 있다. 문자도는 문자가 주인공처럼 중심에 등장, 한 면에 한자 한 글자가 매우 큰 크기로 재현되며, 글씨를 썼다기보다는 그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다양한 색상의 회화적 모티브들이 묵색의 글씨를 채우거나 넘나들며 장식한다.

 

글자 형식화한 문자형과 달리
도화형은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

동식물부터 상서로운 신선까지
길상 뜻하는 물상과 조합하기도


수복문자도(壽福文字圖) 형식은 글자 자체를 구성한 ‘문자형’과 의미 있는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도화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자형 수복문자도 형식은 초기 큰 글자 속에 작은 글자를 넣는 삽입형에서 시작해 이후 100개의 수복자(壽福字)를 장식서체인 잡체전(雜體篆)으로 써서 배열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배열형은 꼭 백 개의 글자 수를 채우지 않더라도 기본 잡체전(雜體篆)을 유지하는 방식과 도안화된 잡체전(雜體篆)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수복문자도 방식이있다. 20세기 전후에는 수복문자도의 저변화로 도안화된 수복문자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화가가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김문제(金文濟, 1846~1931), 조동준 등이다. 또한, 앞서 소개한 이형록의 백수백복도가 대표적인 문자형 백수백복도류이다.

도화형 수복문자도는 이미지화된 문자가 효제(孝悌)문자도나 화조화 등과 조합되거나 길상과 수복을 상징하는 물상과 조합하거나 이들 물상을 문자화한 형식이다. 그렇다면 도화형 백수백복도를 찾아보자.

글씨 형태의 문자도는 20세기 전후 민간에서도 유행하면서 도안화된 문자도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화가가 등장했다. 이미지화된 문자가 효제 문자도나 화조화 등과 조합되거나, 길상과 수복을 상징하는 물상과 조합하거나 이들 물상을 문자화한 형식으로 제작된다. 수복문자도는 민화적인 성격을 띠며 백수백복도의 글씨를 그림으로 변형시킨 유형이 있고, 각종 상서로운 신선과 동자, 동식물과 수자가 어우러진 수복동자도, 백록 선인도를 비롯해 고사인 물화, 화조영모화, 효제문자도 등의 다양한 화제와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먼저 백수백복도의 잡체전(雜體篆) 글씨를 그림으로 변형한 대표적인 예는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의 ≪백수백복도4폭 병풍≫이다.
 

백수백복도-행소박물관
작가미상 백수백복도 4폭 병풍 중 부분 19세기 견본채색 각102×29.0cm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소장.

이형록의 작품처럼 기존 문자의 형태를 유지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서체의 상징 의미를 극대화하거나 수와 복을 상징물을 형상화하는데 주목했다. 특히 각각 전서체의 유래와 의미를 알 수 있게 물상을 도형화한 수자를 작게 써넣는 방식이 특이하다. 동물로는 기린전의 기린 모습, 호서의 호랑이, 과두전의 올챙이, 조서의 새 모습, 유서의 물고기가 떼 지어 노는 모양 등이 있고, 기물로는 고정전의 정(鼎) 모양, 고종전의 종(鐘) 모양 등의 고동기가 많고, 죽서(竹書)처럼 대나무 같은 꽃과 식물을 형상화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 중국 신화에서는 세발자국에서 힌트를 얻어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인간이 글자를 만드니 하늘에서는 곡식의 비가 내리고 밥이 되니 귀신들이 통곡을 했다고 한다. 하늘은 한자의 창안을 축복했지만 귀신들은 이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한자가 주술적인 힘을 가졌다는 믿음이 신화에도 영향을 미친듯하다. 한자의 기원으로 알려진 갑골문(甲骨文)의 용도 중 하나는 주술이었다. 이러한 의미로 백수백복도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주술의 힘으로 죽음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위로 받고, 누구나 복은 받기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원초적 염원과 바램을 담고 있다.

요즘의 글자라고 할 수 있는 켈리그라피(Calligraphy)나 타이포그라피(Typography)와 같은 디자인적인 요소가 가미된 문자가 등장해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져 있지만, 수복(壽福)과 같은 문자그림이 한 시대의 사상이나 염원의 결정체이듯 앞으로도 우리시대의 사상의 의식을 전하는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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