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대구논단>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 승인 2010.11.1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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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몽 선 시조시인

성경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남을 돕는 아름다운 선행을 왜 남모르게 하라고 하는지 그 까닭을 생각해 보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늘이 짙어진다는 말대로 사회가 발전하여 대부분이 풍요롭게 사는 시대일수록 구석진 곳에 소외되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옛날에는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라고 아예 체념하고 버려두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는 국가 대로 사회복지제도 확충에 온힘을 쏟고 있고 국민들은 스스로 자기 형편에 맞게 성금을 내거나 봉사활동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도움 받는 사람의 입장을 역지사지해서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주는 언행을 각별히 삼가야 한다. 남을 돕는다는 우쭐한 생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학교 급식이 유상으로 처음 실시되던 당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선생님이 말한다.

“철수야, 너는 급식비 면제다. 안 내도 된다.” 순간 철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선생님은 형편 어려운 철수를 생각해서 급식비가 면제되도록 힘을 썼다는 뜻이었지만 교실 안 50명의 친구들 앞에 철수는 돈이 없어 급식비를 면제 받는다고 광고한 꼴이 되었다. 가뜩이나 급식비를 못 내어 주눅 든 철수에겐 마음에 큰 상처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 때 경비 때문에 불참하게 되는 학생들을 함께 참가 시키기 위해 담임선생님들은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자칫 그 사실을 학급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알리게 되면 도움 받는 당사자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만나 살짝 귀띔해 주는 배려가 있어야 고마운 도움이 되는 것이다.

허리 굽은 팔순 할머니가 날마다 골목을 다니며 빈 상자나 폐지 모으는 것을 본 젊은 새댁이 다른 집 것도 함께 모아 뒀다가 공손히 그 노인의 리어카에 얹어주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현금을 조금씩 드리고 싶지만 그 노인이 무안해 할까봐 이렇게 돕고 있다고 말했다. 사려 깊은 새댁이 그지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각 직장이나 단체마다 연말이 되면 성금을 모으거나 필요한 생필품을 모아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방문한다. 그리고 봉사활동도 한다. 참으로 가슴 훈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방문자들 중 더러는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온 물품들을 쌓아놓고 도움 받는 사람들, 도움 주는 사람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한다.

사진 한 장이 남 보기에 이웃돕기 실적이 되기 때문이겠지만 도움 받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싫은 일이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사진 그만 찍어라.” “비디오 촬영 하지 말라.” 등의 거센 반발도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들은 여기서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참뜻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연말 신문지상에는 성금을 낸 이들의 사진과 이름, 금액이 공개되기도 한다. 선행을 널리 알리고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인 줄 안다. 하지만 그것도 많은 돈을 낸 사람은 큰 글자 큰 사진, 적은 돈을 낸 사람은 사진 없이 작은 글자로 알려주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가끔은 익명으로 낸 사람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TV에 아프리카 못 사는 나라 어느 시골에 탤런트와 방송인들이 국민이 모은 성금으로 지하수를 퍼 올리고 수도시설을 고쳐주고 교실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 비친 난민들의 생활은 짐승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을 만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반은 장난, 반은 코미디로 놀고 있는 모습을 방영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분위기에 맞게 말씨나 행동, 표정 관리를 진지하게 해야 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문제는 기부, 성금의 많고 적음보다 어려운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이 간절히 요구되는 요즈음이다. 도움 받는 사람의 답답하고 난감한 심중을 십분 헤아려 그들의 자존심을 존중하고 그들의 간신히 버티고 있는 허한 의지에 반하는 언행도 삼가는 신중함을 지닌 `도움 주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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